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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에 관한 연구

Title
당의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Dang-u˘i´(唐衣) : mainly documentary evidence and the actual artifacts
Authors
권혜진
Issue Date
2000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Keywords
당의궁중발기유물의류직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여성 예복인 당의(唐衣)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당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궁중 발기와 현재 전해지는 유물을 중심으로 당의의 유형과 그 특징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에 나타난 보행내인의 저고리를 당의의 기원으로 보는 기원설이 현재까지 가장 타당한 당의의 기원설로 받아 들여지고 있지만 정작 가례도감의궤의 기록에는 '당의'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또한 궁중발기에도 '당의'라는 명칭보다 '당고의', '당저고리', '당의복' 등의 여러 명칭이 혼용되고 있어 당의의 기원설에 여러 가지 이견이 따르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조선시대 각종 궁중기록과 실학자들의 기록에 나타난 여러 가지 당의 명칭들을 조사 분석한 결과 '저고리' > '당저고리' · '당고의' > '당의' 순으로 당의의 명칭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이러한 명칭 변화에서도 당의의 기원이 우리 민족 고유의 저고리에서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긴 저고리에서부터 시작된 당의는 시기별로 길이와 형태의 차이를 보이며 변화하여 조선말기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당의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당의의 깃과 소매의 진동나비 그리고 배래선의 형태는 같은 시기 평상복인 저고리의 형태 변화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당의의 옆선과 도련선의 형태는 시기 별로 곡선과 길이의 변화를 거쳐 조선말기 완만한 곡선 형태의 당의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 당의는 궁중 소례복(小禮服)으로 왕가 여인들이 크고 작은 예식과 명절 그리고 사시사철 문안예의 복식으로 입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재료와 장식의 차이를 두어 그들을 모시는 상궁과 내인들 또한 예복으로 착용하였다. 한편 조선시대 후기 민간에서는 당의를 반가 여인들의 입궐할 때의 예복으로 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들의 예복과 혼례복으로 착용하였다. 또한 혼례의 화동(花童) 격인 어린동비(童婢)들도 당의를 착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민간의 어린이용 당의는 소매를 색동으로하고 장식용 흉배를 달아주어 장식성을 더한 특징이 있다. 일제시대와 6.25동란 등을 겪으면서 한때 거의 그 명맥이 끊기게 된 당의는 1950년대 말에 이르러 한국복식사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다시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한복은 생활복으로써의 기능을 잃게 된 터라 당의는 무용복이나 특별한 무대의상 등에만 제한적으로 착용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사회문화의 발전과 전통복식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계기로 당의는 다시금 여아의 돌복과 신부의 약혼 예복으로 착용되기 시작하였고, 2000년 지금에 와서는 어린이와 성인 여성의 전통복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의는 그 기원을 평상복인 저고리에 두고 있고 예복으로써 착용되었던 만큼 기본복식인 저고리의 구성적 특징과 예복의 장식적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다. 따라서 원삼이나 활옷 같은 예복에 비해 실용적인 형태를 하고 있고 그 아름다움 또한 우리 민족의 미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현대의 전통복식 생활에 다르게 접목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 당의의 제작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보통 계절에 따라 두께를 조절하는 겹과 홑의 제작방법 뿐 아니라, 중요한 예식에 사용되는 내작(內作)이 따로 달린 4겹당의가 있고, 독특한 실루엣을 만드는 한 여름용 깍은 당한삼이 있다. 궁중소례복으로 사시사철 당의가 애용됨에 따라 그 제작법 또한 다양하게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겹당의 두벌을 따로 제작한 후 한데 끼워넣어 착용하는 4겹당의는 왕실의 지체 높은 신분의 여인들이 가례나 관례 등의 특별한 행사에만 착용하는 가장 격이 높은 예복당의였음을 궁중 발기의 연구 결과 밝힐 수 있었다. 당의의 대표적인 색으로는 초록색을 꼽을 수 있다. 초록 당의는 왕실의 지체 높은 어른에서부터 상궁, 내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민간의 예복으로도 쓰일 만큼 일반적인 당의였다. 자주색 당의는 지체 높은 왕실의 여인들만이 착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우리 고유명절인 동지(冬至)와 관계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주색은 팥죽과 같이 벽사(□邪)의 의미를 담고 있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온색(溫色)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큰 명절 중에 하나였던 동지빔으로 자주 당의를 착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제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남송색(藍松色) 당의가 있다. 이것은 초록이나 자주 당의보다는 격이 낮은 당의로 4월 8일 춘절(春節)과 관계 있는 봄철 당의로 생각된다. 흰색 당의는 여름철 당의 또는 상복(喪服) 당의로 쓰였다. 이렇게 당의의 색상은 고유의 계절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각각의 계절에 따라 당의의 색상에 변화를 주어 풍성한 계절감을 누렸던 것이다. 당의의 소재로는 계절에 따라 단(緞) 직물과 사(紗) 직물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당의에 사용된 직물의 문양으로는 일반적으로 도류문(挑榴紋)이 가장 많이 쓰였고, 궁중에서는 그보다 귀한 별문(別紋)이 많이 쓰였다. 또한 당의에는 직금과 부금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수복문자문(壽福字紋)이 다양한 형태로 당의에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당의 유행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 깊이 뿌리박고 있는 전통성과, 이를 되살리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모범 삼아 더욱 많은 전통복식의 발굴과 올바른 복식 문화 창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This thesis is about Korean women's ceremonial jacket, Dang-u˘e(唐衣), and unfolds it origin, history, types and characteristics. Dangui was originated from long cho˘gori(赤古里) seen in Bancha-do(班次圖:paintings of parade) of Ga-rae-do-gan-wi-guae(嘉禮都監儀軌). This is proved in Dangui's old name as well. Dang-u˘i, originally a long jo˘gori, was transformed in length and shape as time went on till the end of the Chosun era. The width of Dang-u˘i's collar and its sleeve style are related to the that of cho˘gori. The side and hem lines were changed in both curvy and straight lines harmoniously, and finally was fixed to curvy silhouette at the end of the Chosun era. In the Chosun era, Dang-u˘i was a ceremonial jacket and women wore this on holidays or when one paid formal respect to others. Not to mention women in royal family, court ladies, with distinction in material and in ornaments, wore the garment too. On the other hand, at the end of the Chosun Era, not only the noble women wore this when they had to enter the palace, but also the ordinary women wore this when they had weddings. At the wedding, little bride-maid girls wore this as well. At the end of the Chosun Era, Dang-u˘i became an ordinary garment in the palace where on had to always show courtesy. It seems that while even lover palace people wore Dand-u˘i as uniform, civilians, with no social activities, only wore it in weddings as a ceremonial costume.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and Korean War, the Royal Family was destroyed and Dang-u˘i lost its trace in social chaos. Dang-u˘i was known to the public again in the late 1950's. But Dang-u˘i had was worn limitedly in dance or performances. Because hanbok(韓服) had already lost its function as a everyday life costume. History of Korean Costume researchers' ceaseless effort to restore traditional clothes and culture development of the 80's made Dang-u˘i to be worn again as traditional dress. First, it started to be worn as the first birthday costume and as an engagement ceremonial costume. And in nowadays, it became an item of tradition costume of both little girls and women. Because Dang-u˘i was originated from ordinary garment of the co˘gori and has been worn as ceremonial costume, it has the characteristics of both the co˘gori's and ceremonial costume's. Therefore, it is practical compared to Wone-sam (ceremonial dress for bride) or Hwalot (Bridal Gown) and it reflects Korean people's aestheticsense, it can be easily grafted in modern traditional costume manners fast. Dang-u˘i's producing method is various. Normal producing method types of Dang-u˘i are and unlined Dang-u˘i and a lined Dang-?i. Four layers Dang-u˘i is made up with two line Dang-u˘is. And there is Dang-han-sam worn is summer which make a unique silhouette. It seems that producing method was developed in various ways due to its havitual use as semi-ceremonial dress(小禮服) in the Chosun Era. Green was Dang-u˘i's representative color. This color was general as to be worn by higher royal family as well as court ladies and civilians. Purple Dang-u˘i could be worn only by higher royal ladies. It was related with our traditional holiday Tong-ji(冬至 : the winter solstice day). Because purple, like red beans, keeps off evil and is a warm color, it seems that it was worn on Tong-ji which was one of the biggest holidays in the Chosun Era. On the other hand, Nam-song(藍松) Dang-u˘i is not much known. It is assumed to be meant lower level but still was worn by royal ladies. This color probably was related to the holiday of April 4th in the spring season(春節). Namsong is thought to be lighter than green. White Dang-u˘i was worn as a summer costume or as a mourning dress(喪服). Our ancestors enjoyed aesthetical sense of season by giving variety of colors. For Dang-u˘i's materials, gossamer(紗) and dan (緞 : damask of satin texture with Korean treditional patterns are unwoven) were most used according to seasons. As a most frequently used pattern of Dang-u˘i, there was Do-ryu(桃榴)pattern(a peach blossom & pomegranate). Byul(別)pattern(雙龍圖紋) was used frequently in palace. Also, Jikgum(金織 : woven with gold thread) and Bugum(金? : gold plaiting) techniques were used. The popularity of Dang-u˘i in modern traditional costume culture was the result of the effort of many popple who worked to restore and revive tradition. On the model of the popularity phenomenon of Dang-u˘i, we should restore more traditional costume items and try to set a proper costume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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