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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新女性 '第二夫人' 연구

Title
1920~30년대 新女性 '第二夫人'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SECOND WIVES" OF KOREA IN THE 1920s~1930s.
Authors
이혜선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e phrase "Second Wives" refers to the new women who became concubines from the 1920s until the end of 1930s. The fact that the new women became concubines would provide an interesting insight to the history of Korea. The reasons in the lack of investigation into the topic is that: i) the topic of "new women" were already recognized as an aspect of modernization of Korean ladies and ii) the "Second Wives" appeared far from the modernization of those so-called "new women." The lives of the "Second Wives" are however very important because they reveal the lives of the Korean females in the beginning of modernization in Korean history. Therefore the investigation of lives of the "Second Wives" will enable us to understand them by researching the various aspects of their lives in the 1920s and 1930s. The investigation will analyze their lives to provide the overall understanding of the "Second Wives". The investigation covers the historical backgrounds,the social expectations and their life-styles in relation to the "Second Wives". The new women wanted to avoid the "arranged marriages" and preferred the male counterparts who received the modern education. However it was normal to marry early and the males whom the new women preferred were already married in the 1920s and 1930s. The imbalance of the age peoples married and the existence of choosing a partner and the early marriage led into the existence of the "Second Wives". The reality the "Second Wives" faced includes females who decided to marry a person or who were deceived by their male counterparts that they were never married before. However there were "Second Wives" who decided to become the second wife for the sake of financial stabilities. The issues of the "Second Wives" were discussed in『New Woman (Sin-yu-sung)』. The males who were known to be intelligent within the Korean society led discussion about the "Second Wives". These "educated males" focused the reason the females become the "Second Wives" resided in the immorality of the ladies. These views and understandings were commonly accepted through the mass-media and public sales. This in turn resulted in limiting the position of the "Second Wives" within the Korean society and put a negative connotation to the "Second Wives". The "Second Wives" often lived in difficult lives because of negative views about them and the poor legal protection system. The reactions "Second Wives" showed during their lives are varied. They tried to remind the public of their situations through their essays being published or by calling themselves "the Second Wives" instead of "Concubines". They also practiced to sue the males who deceived them or somehow made the males to get a divorce with the first wives. There were realistic "Second Wives" who complied with social expectations and measures orpracticed their authority so that they form a hierarchy of the "Second Wives". There were some who also criminalized their lives or committed suicide, revealing the negative views of the contemporary public during the 1920s and 1930s. The early part of the 20th century of Korea were transition period when the new women experienced the old and the newways of living and saw the disharmony between the ideals and the reality.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 ideals and the reality were the very reason for the appearance of the "Second Wives" as they struggled and reacted to the environment they were in. The "Second Wives" therefore show the overall issues the new womenwere experiencing during the time. The rise of the "Second Wives" in times of contradictions during the transition period, the negative views of the society and the "male-superiority" challenged the society yet they were very restricted in many ways by the society in the 1920s~1930s. So "second wives" represent the "new women" of Korea.;‘제2부인’이란 1920년대 등장하여 1930년대 말까지 그 존재가 확인되는, 신여성으로서 첩이 되었던 여성들을 가리킨다. 신여성은 당시 가장 근대적인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었기에, 이들이 첩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여성사에서 중요한 화두를 던져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사적으로는 이 존재에 대해 명확한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신여성들이 한국 여성의 근대성을 살필 ‘논의의 창’으로 인식되어온 까닭에, 신여성의 근대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제2부인’이라는 존재는 본격적으로 검토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설혹 이들을 연구의 부분으로서 다루더라도, 이들에 대해 매우 단순하게 혹은 일의적으로 규정하여 왔다. 그러나 제2부인들의 삶은 20세기 초반 한국 근대를 살아간 신여성들의 삶의 일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제2부인의 삶을 천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국 근대를 살던 신여성들의 다양한 면모를 파악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고는 제2부인과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의 분석을 바탕으로 이들의 실태를 생생하게 드러냄으로써, 제2부인에 대한 종합적인 성격 규정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제2부인 등장의 배경이 된 구조적 요인 · 제2부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차별 · 이들의 삶의 방식 등 제2부인과 관련하여 해명되어야 할 사실들을 폭넓게 밝혀보고자 하였다. 신여성들은 자유연애를 통한 결혼을 원했고, 또한 자신보다 연상의 근대 교육을 받은 신남성을 배우자로 원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혼이 존속하고 있었으므로, 신여성들의 배우자로 선호된 자들의 80% 이상은 이미 혼인을 한 상태였다. 이러한 자유연애와 조혼의 혼재 · 신여성과 신남성 간 결혼연령의 불균형은 제2부인 등장의 구조적 요인이 되었다. 사례들을 중심으로 제2부인의 실태를 살펴 보면 자유연애의 실현 차원에서 제2부인의 삶을 택한 신여성들도 있었고, 유부남이 아니라는 남성의 기만에 속아 제2부인이 된 자들도 존재하였다. 반면 자유연애의 과정과 상관없이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여 제2부인이 된 자들도 있었다. 첩이 되는 신여성의 문제는 『신여성』지를 통해 담론화되어 간다. 제2부인 관련 담론들은 주로 당대의 남성 지식인들에 의해 전개되었으며, 이 현상의 원인을 제2부인들의 부도덕성에서만 찾는 입장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담론의 인식은 『신여성』지의 대중적 인기와 전국적 유통망을 통해 일반 사회의 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제2부인들의 사회적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정적 사회 인식과 함께 열악하였던 법적 지위 속에서 제2부인들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 현실에 제2부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여 나간다. 적극적으로 제2부인으로서의 삶을 꾸려나간 여성들은 남성을 본부인과 이혼하게 하거나, 자신을 속인 남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의 법적인 대응 방식을 취하였다. 또한 스스로를 ‘제2부인’이라 지칭하거나, 남성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수기의 투고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 사회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현실에 순응하여 살아간 제2부인들도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첩으로서의 지위에 안주함으로써 전통적 처첩질서에 편입되기도 하고, 제2부인이 된 스스로의 삶을 죄악시하거나 자살을 택하는 등 사회적 편견을 내면화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논의들을 종합하여 볼 때, 제2부인은 한국 근대 과도기적 사회상의 피조물이라 규정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 한국은 전근대적 사회상과 서구적 근대의 가치가 중첩되어 있었다. 조혼이 존속하고 처첩질서와 적서의 차별이 용인되는 현실 속에서 추구된 자유연애, 신여성에 대한 기대와 그에 상응하지 못한 여성교육의 질, 그리고 이와 함께 존재한 신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성애화 또한 신여성과 구여성의 공존도 과도기 한국의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도기적 사회의 이중성이 제2부인이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제2부인의 출현에는 남성중심적 사회 모순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고 보인다. 제2부인의 상당수가 자신이 유부남임을 속인 남성들에 의해 유발되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사회 담론과 법 규정은 이들에게 관대하였던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특히 자신이 유부남임을 속인 자들이나 제2부인들로 인한 기득권의 상실을 감수하려 하지 않던 자들은, 근대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전통적 가치 질서를 포기하지 못한 남성들의 행태를 반영한다. 그리고 여성문제에 대한 담론의 담당자가 남성들이었고, 이로 인해 남성중심적 편견이 제2부인의 사회적 이미지를 형성하였다는 점도 제2부인 문제가 남성중심적 사회 구조와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제2부인을 유발한 복잡하고 과도기적인 사회 구조는 제2부인이 갖는 이중적 성격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먼저 제2부인들이 추구한 자유연애는 이를 통한 여성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서 제2부인들의 근대적 지향성을 표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제2부인’이라는 호칭을 스스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하거나, 사회적 편견에 반하는 투고나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남성들의 잘못된 행태를 표면화시킨 대응 방식은 제2부인을 신여성의 전근대성만을 표상하는 존재로 치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제2부인은 사회현실을 뛰어넘지 못한 신여성의 한계를 내포한 존재이기도 하다.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거나 그러한 편견을 내면화시킨 제2부인의 모습, 그리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자살이라는 대응은 근대적 교육은 받았으나 근대의 주체로 성장하지 못한 제2부인의 한계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선택과 대응은 새로운 여성문제를 야기하고, 구여성을 포섭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즉 이들이 자유연애의 이상을 위해 선택한 제2부인의 삶과 본부인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한 시도는 남성의 본부인을 완벽한 피해자로 만들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와 함께 이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운 ‘제2부인’이라는 호칭은 첩과 자신들의 차별성을 드러내고자 한 신여성들의 선민의식의 발로로서, 이는 제2부인들이 구여성 뿐 아니라 일반 첩들의 지지도 스스로 포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여성들의 특권의식은 신여성들의 여성운동이 ‘부르주아들의 회합’에만 그치고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일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20세기 초반 한국의 신여성들은 전근대와 근대가 경합하는 과도기적 상황 하에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경험하였다. 그 사회 모순에 대한 신여성들의 고민과 대응의 결과가 제2부인이라는 존재로 나타났던 것이다. 요컨대 제2부인은 과도기적 모순과 사회의 편견, 그리고 남성들의 전근대적 행태 속에서 등장하였고 또한 이에 대항하고자 하였던 존재이며,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 시대적 한계를 내포하였던 존재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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