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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日本婦人會 朝鮮本部(1942~45년)의 결성과 활동

Title
大日本婦人會 朝鮮本部(1942~45년)의 결성과 활동
Other Titles
The Formation and Activities of the Korean Branch of the Japanese Women’s Society(大日本婦人會 朝鮮本部) (1942~45)
Authors
박윤진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이 연구에서는 1942년 3월 14일 결성된 일본인 부인단체인 大日本婦人會 朝鮮本部의 결성과 활동을 통해서 1942~45년 당시 총독부의 부인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울러 총독부가 조선본부를 활용한 이유와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가 추진한 동화정책과 동원정책의 성격을 파악해보았다. 이 단체를 선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가 결성되어 활동하였던 시기(1942~45년)가 1942년 5월 징병제 실시를 결정한 이후로 총독부의 조선부인에 대한 정책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둘째,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는 총독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관변단체로서 전국적인 규모로 조선여성을 동원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여성동원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의 결성원인과 활동, 그 영향을 알아보면서 총독부의 부인정책의 추이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의 결성은 일본의 대일본부인회 중앙본부의 결성에서 비롯되었지만 조선 내부의 필요성에 의해서도 결성되었다. 첫째, 조선의 농촌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가정부인을 대상으로 한 노동력 동원을 할 부인단체의 필요성 때문이다. 둘째, 징병제 실시 결정으로 인해 가정 단위까지 황국신민화정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정부인들을 의식화 시킬 부인단체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에서 추진한 동화정책은 일본여성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내포되어 있었다. 조선본부는 조선여성에게 일본여성과 같이 군국의 어머니상, 생산자로서의 銃後婦人像을 요구하면서 이것을 수행할 경우에 진정한 일본여성이 될 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조선여성들을 실질적으로 일본여성과 같이 인정해준 것이 아니라 노동력 동원의 대상으로 취급하였다.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가 추진한 사업 목적도 조선 가정부인의 노동력 동원이었다. 탁아소 등을 개설하고, 근로보국대, 농업추진대를 만들어 여성들을 동원하였다. 그 동원방식도 조선본부가 행정의 말단조직이었던 町會까지 세력권으로 확보하여 정회를 통해 애국반 단위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한편 國民總力朝鮮聯盟(이하 총력연맹)은 부인 노동력 동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와 협조하였다. 총력연맹은 1940년 이후 당시 관변단체로서 총독부의 행정보조기관과 같은 조직이었다. 총력연맹이 조선본부와 협조한 이유는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 역시 일본의 지부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말기의 상황에서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총력연맹 내부의 부인부 조직을 활성화시키는 것보다 부인단체를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는 동원뿐만 아니라 생활통제와 공출을 목표로 하였다. 조선여성의 일상생활통제를 위해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는 궐기대회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또한 생활 지도자를 육성하여 일제가 원하는 방식의 생활방식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가정을 지키는 부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었으므로 조선여성들의 저항은 있었지만 상당히 영향을 주었다. 또한 저축 추진원을 府郡島 각 지부에 파견하여 저축금 공출, 유기 공출 등을 하게 하여 조선가정에서의 물자 역시 일일이 통제하였다. 이상과 같이,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는 총독부 부인정책인 동화, 동원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도 동원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총독부의 의도도 유추할 수 있다.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는 일본의 전쟁의 위기인 1945년 6월 해산되고 國民義勇隊로 편입되었다. 국민의용대는 전 조선을 군대조직화 시키는 것으로 동화정책과 같은 선전정책은 활용하지 않고, 동원만을 추구하였다. 이는 총독부 부인정책의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는 해방 직전에 해산되었지만 일본인 부인단체가 전 조선의 여성들을 동원하고, 의식화시키려 했었던 유일한 전국규모의 단체로서 의미가 있다. 그 실상은 총독부의 지원, 일본 중앙본부의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를 통해서 가정 안에 있는 부인들까지 철저히 동원할 수 있었다는데 의의를 가진다. 또한 조선본부는 전국적인 규모였던 단체였기 때문에 그 운영방식이 조선여성에게 해방 이후의 사회에서 영향을 줄 수 있었다.;This thesis examined policies toward Korean women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during the period between 1942 and 1945 by studying the formation and activities of the Korean branch of the Japanese Women’s Society (大日本婦人會 朝鮮本部, KBJWS), the Japanese women's group organized on March 14th, 1942. Also we explored the reason why the Government-General utilized KBJWS along with characteristics of assimilation and mobilization policies driven by KBJWS. KBJWS was chosen for this study for the following reasons: Firstly, the period during which KBJWS operated (1942~1945) followed the time when the conscription system was decided to be enforced afterwards, May 1942. During that period, policies of the Government-General toward Korean housewives were developed most vigorously. Secondly, KBJWS as a government's organization hav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Government-General played a crucial role in mobilizing Korean women on a nationwide scale. Therefore this thesis intended to closely examine the transition of policies toward Korean women of the Government-General by looking into the background of formation, activities, and influence of KBJWS. First of all, the formation of KBJWS was arisen from that of the Japanese Women’s Society (大日本婦人會 中央本部). However, it was attributed to the internal need of the colonized Korea as well. KBJWS carried out drafting Korean housewives as labor forces to supplement the shortage of labor forces in rural areas as well as the assimilation policy on each household. The assimilation policy operated by KBJWS was not a complete unity of Korean women with Japanese women but was, in fact, a discrimination against Korean women. KBJWS made propaganda that Korean women could truly become Japanese women as long as they become "militaristic mothers" and "Madam in the rear guard" (銃後婦人) as producers just like Japanese women. However, in fact, Korean women were not treated equally as Japanese women but were exploited only as labor forces. The primary objective of KBJWS was to mobilize Korean housewives as labor forces, which was facilitated by opening nurseries and making labor patriotic squad (勤勞報國隊), agricultural driving squad (農業推進隊). Its mobilization method was to secure "Chong-hoe" (町會), the smallest unit in the administration as its sphere of influence. Thereby KBJWS was able to mobilize patriotic units through "Chong-hoe" (町會). On the other hand, National All-Out Campaign (國民總力 朝鮮聯盟) chose to cooperate with KBJWS for easier mobilization of Korean women. That was because KBJWS had a substantial influence as a branch of Japanese Women’s Society. Therefore National All-Out Campaign made use of KBJWS instead of revitalizing its own women’s society (婦人部). In addition to such a mobilization, KBJWS aimed to control the living of Korean women and delivery (供出), which was conducted by nationwide campaigns. Also KBJWS nurtured leaders to oblige Korean women to follow Japanese lifestyles, which was considered to have made a significant influence on Korean women’s lives despite their resistance. Moreover, facilitators for savings (貯蓄推進員) were sent to each branch of "Bugundo" (府郡島) and then took charge of delivering savings and brassware. Thereby KBJWS exploited goods of Korean household. As described above, KBJWS enforced the mobilization and assimilation policies, simultaneously, which were ones of the Government-General toward Korean women. However, the mobilization policy was more focused on. From this, the intention of the Government-General could be easily inferred. KBJWS was dissolved at the end of the war in June 1945 and then was incorporated into National Civilian Army (國民義勇隊). National Civilian Army pursued only the mobilization while having neglected the assimilation policy. This clearly reveals the change of the Government-General’s policy toward Korean women. In conclusion, the significance of KBJWS is that it was a sole nationwide organization directed by Japanese women with an intention of mobilizing and assimilating the entire Korean women. Although in reality KBJWS was substantially supported by the Government-General and Japanese Women’s Society, it had its significance in that it was able to thoroughly control and mobilize Korean housewives. It could be easily considered that since KBJWS was a nationwide organization, its managing system was acquired to Korean women, and then continued to influence Korean societies even after the independence of Korea from Japan in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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