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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溪 朴世堂 문학의 연구

Title
西溪 朴世堂 문학의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Seogye, Sedang Park's Literary Works : Focusing on the Relational Aspects of the Ideological Characteristics and Literature
Authors
최윤정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본 연구는 西溪 朴世堂(1629(인조7)-1703(숙종29))의 문학 세계를 사상적 특징과 관련하여 고찰하고, 조선후기 문학사에서 서계 문학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시도되었다. 당대엔 이단으로 내몰리고, 현대에 와서는 탈주자적이고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서계의 사상은 조선후기 사상계의 변화를 설명하는 배경적 요소로 주목을 받아왔다. 본고는 당대에 논란이 되었던 서계의 사상적 특성이 문학과 어떠한 상관성을 지니며 규명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존 연구가 없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서계의 문학과 사상이 형성하고 있는 의미가 조선후기 문학사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추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Ⅱ장에서는 ‘서계 문학 형성의 배경과 사상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먼저, 서계 문학을 형성하게 된 私的 경험과 관계된 부분은 개인적 생애와 교유 양상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서계의 생애는 주로 저술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詩錄 등을 중심으로 문학·사상적인 면과 관련 있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교유 양상은 『西溪集』에 수록된 다수의 교유시를 통해 파악하였다. 서계가 교유한 인물들의 대다수는 소론 계열의 인사들이었고, 이들과의 상호 관계를 통해 당대 문단의 일단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문단 동향에서는 당대 잇따른 정쟁으로 인해 ‘서인/남인’·‘노론/소론’의 갈등과 분기가 후대로 갈수록 첨예하게 대립하며 간극이 발생하고, 정파에 따라 문학적 평가를 달리하게 되는 양상을 정리하여, 서계 문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그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측면을 지적하였다. 또한, 서계 사상의 특징적 요소 가운데 문학적으로 상관성을 지니며 규명할 수 있는 부분을 實 지향성과 개방성으로 정하였는데, 이는 곧 ‘儒·道·佛’의 사상적 맥락과 관련된 것이다. 서계가 저술한 『사변록』은 반대파에 의해 斯文亂賊으로 내몰린 계기가 된 六經 註解書이다. 서계는 朱子의 학설만을 맹신하던 당대의 학문 풍토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자기 나름의 육경 주해서를 편찬하게 된 목적을 밝혔다. 서계가 『사변록』 저술을 통해서 강조한 요소 가운데 문학적인 형상화와 관련된 부분은 ‘實’을 지향하고, ‘眞/ 情’을 중시한 점이다. 「詩經思辨錄」에서 서계는 기존의 특정한 설을 추종하지 않고, 시의 체제나 맥락 등을 궁구하여 나름대로 재해석하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性情’ 대신에 ‘情’이란 말을 써서 시의 발생을 설명하고, 思無邪의 의미 또한 情의 순수한 표현 여부에 관련된 것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관점은 ‘眞/ 情’을 중시하는 그의 문학론과도 연계된다. Ⅲ장에서는 ‘儒家 이념의 재해석과 형상화 양상’을 고찰하였다. ‘實’을 지향한 학문적 태도는 가치 판단에 있어서 명분보다는 실질을 우선시하는 경향과, 문학 작품을 형상화하는데 관련된다. 여기에서는 ‘先秦 儒家 정신의 회복-본질의 탐구와 강조’,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평가’, ‘實利的 대외 인식과 내면 의식’으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실질적 논리를 지향하고 현실적인 합리성을 중시한 태도는 역사적 인물을 당대의 입장에서 재평가하거나, 급변하는 대외 현실을 인식하는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서계가 淸나라로 변화된 중국 본토를 인식하는 태도에는 공식적인 입장과 개인적인 입장에 차이가 나타나며 갈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Ⅳ장에서는 그의 사상적 개방성과 연관하여 ‘道·佛에 대한 태도와 문학적 구현’에 대해 고구하였다. 서계는 老莊註解書를 저술할 만큼 전문적이고 독자적인 차원에서 老莊思想을 연구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수용하였다. 그의 노장 관련 저술은 당대 반대파에게 비판을 받고 異端으로 배척당하게 된 주요 요인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노장 해석은 儒家的 관점을 완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은거 시기는 노장사상에 대해 천착하고 연구하며, 仙趣的 경향의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주요한 계기였다. 서계의 道家 관련 작품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유가적 입장에서 도가 사상을 수용하여 노장 사상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거나, 유가적인 가치 개념과 유사한 부분을 추출해내려 하였다. 둘째, 자신의 出處 문제나 자연 인식과 관련된 측면에서 문학적 모티프로써 道家的 소재를 수용하였다. 서계가 비록 도가 사상서에 대한 주해서를 내기는 하였지만, 문학적으로 이를 수용하는데 있어서는 사상적인 면과 일종의 모티프로써 활용한 측면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는 서계의 작품에 遊仙詩보다는 仙趣詩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몇몇 작품에서 儒家的인 발상이 엿보이는 詩的 특성을 감안하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서계가 도가적 모티프를 수용하여 표현한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의 현실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렇게 서계가 儒家 經典을 재해석하고, 老莊사상을 수용하는 등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에 비해 불교 사상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배척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儒者의 입장에서 佛道를 평가하였다. 그러나, 異端 세력에게 실제적으로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포용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서계는 당시 西人系 인사들에 의해 정신적 표상으로 추숭되던 金時習의 영당을 마련할 때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서계는 이념적인 차원에서 불교 사상을 이단시하는 것과 실생활에서 그 세력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다른 층위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그의 실질을 중시하는 사상적 태도가 佛家 세력과의 共助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서계는 승려들과의 문학적 교유를 통해 俗·禪의 交感과 超脫的 風趣를 구현하였다. 서계가 佛僧들과 맺었던 관계 양상을 살펴보면, 그의 실질을 지향하는 사고와 일상성을 중시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Ⅴ장에서는 서계 문학의 특징 및 문학사적 의의를 살폈다. 서계의 사상적 특징과 문학 작품을 관련하여 살펴본 결과, 사상이 문학 작품을 통해 온전히 구현되는 면도 있지만, 사상과 문학 세계가 괴리를 보이는 면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는 문학과 사상이라는 영역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한 개인의 公的 발화와 私的 인식이 빚어내는 복합적이고 갈등적인 모습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서계의 문학과 사상이 형성된 17세기 후반-18세기 초는 조선후기로 지배 세력에 의해 주자학적 질서가 더욱 공고하게 확립되어가면서도, 동시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사상적 개방성이 문제시되던 때였다. 서계의 문학에 나타나는 사상적 개방성이나 實 지향의 면모는 주로 개방적이고 박학적인 학문 경향을 특징으로 하는 成渾 학통을 계승한 소론계의 특성과도 관련된다. 서계 문학의 특징적 요소는 조선후기에 와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문학의 본질 문제, 실학적 면모, 사상의 개방성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모와 밀착되어 있다. 서계의 이단 사상·세력에 대한 태도나 이에 대한 반대파 인물들과의 논란은 보다 열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 과정이었다. 서계의 문학과 사상은 복잡다단한 시대를 통해 이루어진 독자적인 성과물인 동시에 후속 세대와의 교량적 역할을 해주고 있다.;The research was motivated to investigate the literary world of Seogye, Sedang Park (1629, 7th year of King Injo - 1703, 29th year of King Sukjong) in association with the ideological characteristics, and to establish the status of Seogye's literary works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in the latter half period of Chosun. Seogye's ideas have been in the spotlight as a background factor which accounts for the change in the ideology of the later period of Chosun. His ideas were stigmatized as heterodoxy back in Seogye's times, and they are evaluated as de-Zhuziized innovation in the modern times. The discussion of this thesis starts with the problematic consciousness why there is no existing research on how the then-controversial ideas of Seogye can be examined in relation to the development of his literary works. Therefore, it aims to find the implications which are carried by Seogye's ideas and literary works into the history of the literature in the later era of Chosun.. Chapter Ⅱ looks into the 'background for the formation of Seogye's literary works and the characteristics over his ideology'. With regard to the personal experience which helped to form Seogye's literature, the discussion centers around the personal career and companionship. As for his career, the focus is on the aspects related to the literature and ideology, principally based on the anthologies of poetry whose dates can be tracked down. The patterns of companionship were apprehended through the numerous poems of friendship included in the Collection of Seogye's Works. Most of the Seogye's friends were from the Soron faction, from whose mutual relations can a phase of the contemporary literary circle be inferred. With respect to a trend in the literary circle, it points out that there has not been a fair and just criticism about Seogye's works, explaning the facts that the conflicts and divergences between Seoin/Namin and Noron/Soron, due to a consecutive series of political strifes, became worse toward the later period, resulting in sharp confrontations and cleavages, and the literary evaluations differed in accordance with the political cliques. This thesis argures that Seogye's idelogical characteristics are aspiration for substance and idelogical openess, which can be examined in the aspects of literature, and related to Confucianism, Taoism and Buddhism. Seogye circumambulatingly criticized the contemporary scholastic climate in which Zhuzi's doctrines were blindly believed, and he clarified the purpose for compiling the annotation of the six Confucian classics in his own interpretation. Among the elements stressed in Seogye's Sabyeonlok were the aspects of literary crystallization which are the emphasis of 'nature(眞)/ feeling(情)' and aspiration for 'substance(實)'. In his Sabyeonlok on the Book of Odes (Sigyeong), Seogye did not follow in the wake of any extant theories, but adhered to his own way of reinterpreting the book by mastering the structure and context of the poems. This attitude is related to his literary theory which thinks highly of the authenticity of literature. Chapter Ⅲ examines the 'phases in the reinterpretation and formulation of Confucianism'. This academic attitude of Seogye's has to do with his tendency to prioritize substance over cause in his value judgment and the embodiment of his literary works. The attitude leaning toward essential logic and realistic rationality is strikingly represented in the reassessment of historical characters from the contemporary perspective or in the recognition of rapidly changing external reality. However, there appear discrepancy and conflicting aspects between the official stance and personal standpoint in Seogye's perceiving mainland China which turned into Ching. This can be evaluated as limitations of understanding in the sense that his outlook and philosophy that think highly of essence are not completely materialized in the literary works. Chapter Ⅳ considers the 'stance toward the Buddhism and Taoism and its literary realization'. Seogye studied Lao-Chuang Taoism in a professional and unique dimension to the extent that he wrote the annotations on Lao-Chuang and accepted it literarily. His writings related to Lao-Chuang was one of the major causes which put him under criticism by the opposition of the age and had him ostracized for being a heretic. However, his interpretation of Lao-Chuang was not entirely far from the viewpoint of Confucianism. His retirement became a critical period during which being inquisitive, he conducted research about Lao-Chuang philosophy, and created literary works which had a tendency to be Seonchui, i.e., training oneself with vain thoughts and sound body by strolling in the woods. Seogye's works relevant to Taoism can be recapitulated into two broad characteristics. First, they accept Taoism from the standpoint of Confucianism. Then they either reperceive the value of Lao-Chuang ideology and render meaning to it, or attempt to abstract those which are similar to the Confucian concepts of value. Second, with regard to his own course of action and perception of nature, Seogye accepted the Taoist subject matters as literary motif. Although Seogye wrote the annotations about Taoism books, his reception of the philosophy into his literature is realized in the utilization of it as both ideology and motif. This fact becomes evident when we consider that there are more Yuseon poems, which sing about the desire for leisure and longevity based on the legendry of hermits, than Seonchui poems in Seogye's poetry, and some of his works take on the poetic features grounding in Confucian ideas. Furthermore, most of Seogye's works, which accept the Taoist motif, gear into the actual circumstances of his own. Seogye took a vigorous stance against Buddhism whereas he showed an open and flexible attitude toward Confucianism by virtue of reinterpreting the scriptures of Confucianism and accepting the Lao-Chuang ideas of Taoism. He judged the Buddhist doctrines from a Confucianist's perspective. However, Seogye maintained a comprehending attitude when it comes to how to deal with the heretical forces in actuality. He was indeed criticized due to the fact that he received help from the Buddhist monks with building a shrine for Siseup Kim who was revered as a mental mainstay by the Seoin faction ("West" clique as opposed to "South" clique in that period; one of the political groups in the Chosunera). Nevertheless, he differentiated the issue of regarding Buddhism as heresy in terms of ideology from the issue of forming relations in real life with that heretic group. His ideological attitude that values much of substance made it possible to cooperate with the Buddhist forces. Through literary companionship with the Buddhist priests, Seogye embodied sympathy between mundaneness and Zen and transcendental elegance. Investigating the aspects of Seogye's relations with the Buddhist monks enabled us to find out that they reflect his way of thinking that aims at substantialism and his attitude that lays stress on dailiness. Chapter Ⅴ investigates the correlation between Seogye's literature and his ideology, and their implications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The examination of the contemporary issues in association with the Seogye's ideological characteristics and literature, shows that Seogye's ideology is realized in the literary works to full extent. However, it cannot be denied that there are discrepancies between his ideology and literature, as well. This can be ascribed to the fundamental differences between the areas of literature and ideology, but it can also have a bearing on the complicated and dissenting aspects caused by an individual's official locution and personal cognizance. The period between the end of the 17th century and beginning of the 18th century, when Seogye's literature and ideology were formed, is the second half of the Chosunera in which the order of Zhuzi Confucianism was being established even more robustly by the ruling power, and at the same time the openness of ideology was called into question in reaction to the dominant trend. The aspects of ideological openness and substantialism in Seogye's works are also connected to the traits of Soron faction which succeeded to Seonghon(成渾) School which can be mainly characterized by openness and erudition in scholarship. The characteristics of Seogye's works in relation to the ideological issues adheres closely to the enormous transformation of paradigm in terms of the authenticity of literature, features of realism, and openness of ideology which became in full swing in the latter half of Chosunperiod. Seogye's attitude toward the heretical ideology and forces and the refutations to the opposing people were the throes in the course toward the more open world. Seogye's literature and ideology are not only the unique achievements produced through the raveled age, but they also serve as a bridge to the succeeding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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