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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ㆍ조선전기 法寶信仰과 經藏建築의 변천 연구

Title
고려ㆍ조선전기 法寶信仰과 經藏建築의 변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ransition of The Worship of the Sutra(法寶信仰) and Architecture embodiment(經藏建築) in the Koryo and Chosun era
Authors
이경미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佛塔信仰이 점차 수그러들면서 등장한 대승불교의 法寶信仰은 경전을 수지하고 읽고 외우며 설하고 書寫하는 공덕을 강조하여 경전은 곧 부처라고까지 확대되었다. 인도의 불교성전은 불교 전파와 함께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입수되면서 점차 漢譯하는 과정과 목록화 작업을 거쳐 이른바 佛敎聖典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經·律·論을 모두 포함한 三藏 즉 5,048권에 달하는 방대한 『대장경』을 완성시켰다. 초기에 경전을 제작하는 수단은 손으로 베끼는 書寫 방식이었으며 점차 단순히 베끼는 단계를 넘어 金泥, 銀泥 등으로 베끼는 裝飾經으로 변화하였다. 이러다가 송대에 들어서 인쇄술의 발달은 『대장경』을 조성하는 법보신앙을 더욱 고조시키는 수단이 되었으며, 사경도 소멸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法布施에 대한 신앙심이 증가되자 경전을 안치하는 장소인 經藏에도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동아시아 불교사원에서 초기 경장은 단순히 저장하는 용도의 經樓 내지는 經庫 성격의 비중 낮은 건물을 조성하였다는 특성을 지녔지만 점차 단순 서고기능에서 벗어나 예배공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대장경』을 안치한 예불공간으로서의 전각 명칭은 중국의 경우 藏殿, 輪藏殿, 轉輪藏殿, 藏經閣, 毘盧閣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大藏殿, 大藏堂, 大藏閣, 海藏殿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지만 이 모루를 함축하는 용어는 경전을 담은 그릇 즉 經藏이라 판단되어 본 논문에서는 경장으로 통칭하여 기술하였다. 경전 봉안용 전각은 각 나라마다 풍토에 맞는 양식과 구조를 선택하였으나 동아시아 목조건축 문화권에서는 이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경장건축의 특성은 외관보다 실내의 莊嚴에 있는데 경전을 안치하기 위한 시설 즉 서가 내지는 벽장을 어떤 방식으로 꾸미는가에 따라 구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서가는 보통 고정식 벽장을 주로 시설하여 경전을 안치하였지만 轉輪藏이란 형식의 회전식 서가가 등장하면서 경장건축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전륜장은 회전하는 기능을 가진 서가로서 한번 돌리면 전륜장 안에 들어있는 경전을 한번 읽은 효과를 얻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발생시기와 기록 등으로 미뤄 볼 때 전륜장은 梁나라 傅翕이 창안한 시설로 인정하고 있다. 이후 북송대에 본격 건립하기 시작하였으며 남송대는 과히 전륜장 조성 열기가 고조되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전륜장은 중국뿐만 아니라 고려와 일본에서도 유행하였으며, 일본의 경우 경장은 전륜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남송 강남선찰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三國時代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경전을 안치하는 시설은 사찰 구성에 필수요소였다. 앞서 거론하였듯이 초기의 경장은 단순한 저장고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經樓 위주였으나 고려전기를 기점으로 예불공간화한 경장건축으로 성장한 大藏殿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고려는 국난을 당하자 佛力의 가피를 얻어 난관을 타개하려는 일념으로 『대장경』 板刻에 열중하였으며 완성한 경전을 안치하기 위해 여러 사찰에 대장전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書架方式에 관해서는 사료 부족으로 상세하게 알기 어렵다. 고려전기 경장건축에 새로운 변화는 당시 북송의 강남지방을 방문한 대각국사 義天과 혜소국사 曇眞으로부터 일어났다고 판단된다. 의천과 담진이 집중적으로 순력한 북송의 江浙지역은 불교가 매우 흥성한 곳이었고 전륜장을 건립하는 조류가 시작되면서 곳곳에 전륜장을 조성하고 있는 시기였으며, 宋代 전륜장 가운데 열에 아홉은 江浙지역에서 건립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의천과 담진이 송에서 귀국한 뒤부터 그들의 문도와 주변 인물이 기거하는 사찰에 전륜장을 건립하였던 사례가 집중 남아있기 때문이다. 몽고의 칩입이 격화되면서 고려전기에 판각한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자 강화도로 임시 천도한 고려 조정은 『재조대장경』 판각에 돌입하여 이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재조대장경』 관련 경장건축의 실상은 사료 부족으로 상세한 면모를 알 수 없는 상태이고, 몇몇 사찰에서 두 개의 윤장을 안치하는 兩輪의 전통이 등장하고 있어 무신집권기의 특성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시도하였다. 원간섭기는 고려시대 법보신앙이 가장 성행한 시기였다고 판단된다. 고려와 원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江浙지방에서 『대장경』을 구해 고려의 사찰에 안치한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개경 승천사 전륜장 조성 사실은 고려쪽 기록에서는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전륜장 건립 사실을 원의 기록을 통해 찾을 수 있어 양국가의 교류는 물론 전륜장 건립은 현재까지 알려진 사료를 넘어섰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출신인 元皇室의 奇皇后, 역시 고려출신인 환관 高龍鳳 등은 원간섭기를 대표하는 檀越로 활약하였다. 이들은 청평 문수사, 전주 보광사, 금강산 장안사 등을 지원하여 사찰을 중창하였으며 특히 보광사와 장안사에는 전륜장을 구비하였다. 반대로 고려인도 원나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법보신앙을 실현하였는데 충선왕과 그의 측근은 원의 사찰 곳곳에 『대장경』을 시납하고 나아가 사찰 중건을 지원하였다. 특히 충선왕은 대각국사 의천이 머물던 항주 혜인사를 중건하게 하고 『대장경』을 시납하였으며 윤장을 건립하였다. 이처럼 원간섭기에는 여·원 교류의 양상이 다른 시대에 비하여 뚜렷한 쌍방향 교류였음을 알 수 있다. 麗末鮮初는 경장건축 사례를 볼 때 법보신앙이 가장 극성한 때로 판단된다. 그런 만큼 『대장경』 施納에 참여하는 계층도 왕실 중심이었던 전대에 비해 사대부계층까지 확장되는 변화를 보인다. 양주 회암사의 대장전은 여말선초 경장건축을 대표하는 사례로서 그 자체의 변화는 곧 여말선초~조선전기에 걸친 경장건축의 변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즉 고려말 懶翁이 중창할 당시 회암사 대장전 내부에는 전륜장을 시설하였지만 조선전기를 지나면서 전륜장을 제거하고 대장전 중심에 불상을 안치하고 삼면 벽에는 경전을 봉안하는 벽장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개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고려말까지 전륜장을 조성하던 분위기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이후 조선전기로 접어들면서 점차 전륜장은 쇠퇴하고 불상과 경전을 함께 봉안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회암사 대장전을 통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초기 왕실의 법보신앙은 다양한 경장건축을 구현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장전은 물론 사리탑 형태의 경장, 누각형 경장 등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연복사 사리탑은 비로자나불, 『대장경』, 사리를 각각 층별로 안치함으로써 造塔 공덕뿐만 아니라 法寶崇仰의 공덕까지 겸비하는 효과를 얻었다. 태조가 발원한 覺林寺에는 정문에 『대장경』을 봉안하였는데 이는 頂戴儀禮를 변용한 경장건축의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조선전기 경장건축에 관한 사료는 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는데 이는 사료상의 부족뿐만 아니라 실제 건립 사례도 축소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더하여 고려말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전 요청도 조선전기 경장 쇠퇴에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소략한 자료 속에서도 추정할 수 있는 분위기는 기존 경장의 개수(회암사 대장전)와 경판 봉안의 경향을 꼽을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 법보신앙의 주대상은 당연히 書寫하거나 印刊한 경전이 되고, 경판은 경전을 찍어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아 중국이나 일본의 경장 가운데 경판을 예배대상으로 삼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조선전기 해인사에서 벌어진 경장건축의 변화는 바로 경판 자체를 예배대상으로 승격시켰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해인사는 1490년을 전후한 중창공역 때 기존 대장전을 헐어내고 경판을 주대상으로 삼은 장경판전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후기 불교사원에서도 경장건축은 여전히 구비하여야 하는 필수시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병화로 소실된 사원을 복구하면서 대장전 내지 해장전이란 당호를 사용한 전각을 건축하였다. 조선후기에 들어서 나타탄 새로운 경장건축은 바로 T자형 평면을 갖춘 누각형 대장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확실하게 밝혀진 사료는 송광사 대장전에 불과하지만 낙산사와 해인사에도 이와 같은 T자형 누각을 갖추고 있어 이를 누각에 반영된 頂戴의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초기 각림사 정문에 『대장경』을 안치함으로써 처음 나타난 頂戴儀禮는 이렇게 임진왜란 이후 T자형 누각식 대장전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경장에 안치할 경전의 일차 장엄은 인간한 경전을 경함에 넣어 이를 서가에 안치하는 방식이 주종을 이룸을 알 수 있다. 서가방식은 고정식과 회전식 두 방식으로 고정식은 벽장, 회전식은 전륜장을 가리킨다. 경장의 배치에 대장전은 주불전에 버금가는 위치에 자리 잡았고, 전륜장을 시설한 것으로 확인된 몇 개 사찰의 경우는 일반 신도가 접근하기 어려운 사찰의 안쪽이나 중요시설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전륜장이 일반까지 확대되지 못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평면은 3×1칸이 많고, 영국사(지륵사) 건물지는 1×1칸의 전륜장 설치한 건물지로서 고려시대 전륜장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입면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더욱 드물지만 3×1칸짜리 대장전은 봉정사 극락전의 입면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신륵사 대장각은 2층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다양한 입면 형태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T자형 누각식 대장전의 건축형태는 아직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확인하지 못해 조선시대 새롭게 고안한 대장전의 형식으로 짐작된다. 배치면에서 볼 때 중국의 경우 송대이후 명대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법보신앙 관련 전각은 서쪽에 자리하고 주불전 전면에 두는 특성을 드러내지만 우리나라의 사례는 동서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어 새로운 관점으로 파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대장경』은 단지 불교성전이란 면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녔다. 『대장경』을 매개로 전개된 문화교류의 양상과 활발한 인적 교류는 동아시아 삼국의 불교문화권의 특성과 차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대장경』 교류는 宋과 고려, 조선과 일본으로 이어지는 문화교류의 아주 중요한 매개체였고, 이러한 경전의 교류를 통해 경장건축까지 교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The Worship of the Sutra(法寶信仰) of Mahayana Buddhism, which emphasized that keeping in mind of the Sutra, reading , memorizing, addressing and virtuous deeds of copying(書寫), appeared as The Worship of the Stupa(佛塔信仰) gradually waned, and came to be expanded up to the idea that the Sutra is namely Buddha. India Buddhist Scriptures, along with the propagation of Buddhism, were imported into China via the West, gradually went through the process of translation and cataloged work, and completed massive Daejanggkyeong(『大藏經』) with 5,048 volumes, which is Tripitaka(三藏), a so-called aggregate of Buddhist scriptures including all of St-ra-pitaka(經)·vinaya-pitaka(律)·abhidharma-pitaka(論). Early on, the means of making the Sutra was the method of copying(書寫), which copied it by hand, gradually overcoming the mere copying-step, and changed to Decorated Stura(裝飾經), which copied it with gold paint(金泥) and silver paint(銀泥). In that manner, entering into Song Dynasty, the development of typography became a means that heightened much more Beopbo religion(法寶信仰) promoting Daejanggkyeong(『大藏經』), and copying the Sutra(寫經) was manufactured continuously as well without being extinct. With the increase of faith in Bobbosi(法布施), it stirred up changes in Kyungjang(經藏) - a place where the Sutra was enshrined. Though the early Kyungjang(經藏) had a feature that promoted a building, which had less weight on the character of Kyungru(經樓) or kyunggo(經庫) for a use simply to store, it came to be elevated to a worship space, gradually overcoming a mere library function. Though the name of a palace(temple:殿閣), as a worship space where Daejanggkyeong was enshrined, was called in many ways such as Jangjeon(藏殿), Jeonrunjeon(輪藏殿), Jeonrunjangjeon(轉輪藏殿), Jangkyungak(藏經閣), and Pirogak(毘盧閣) in China, and Daejangjeon(大藏殿), Daejangdang(大藏堂), Daejanggak(大藏閣), and Haejangjeon(海藏殿) in Korea, the term implying all of the names was considered as a vessel containing the Sutra, namely Kyungjang(經藏), and recorded as a common designation of Kyungjang(經藏). Although the palace for the purpose of the Sutra enshrinement chose a mode and structure suitable for the natural features of each country, Culture of Eastern Asia in Wooden Construction has something in common penetrating the choice. The feature of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is laid on the sublime(莊嚴) inside rather than external appearance, and its composition varies according to a method to decorate a facility to enshrine the Sutra, namely a bookshelf(書架) or a built-in closet. The bookshelf normally set up a built-in closet and enshrined the Sutra, whereas a new trend stirred up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as a revolving bookshelf in a mode of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appeared. Revolving wheel sturas, as a bookshelf with the function of a revolution, implies the meaning that one revolution gives an effect of reading the Sutra one time, which was enshrined in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Considering occurrence time and records, it is recognized that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was a facility invented by Buheup(傅翕) in the Yang Dynasty. Later on, it started building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actively in the Northern Song period. In the Southern Song period,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the promotional ardor for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was heightened.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was popular not only in China, but also in Koryo and Japan. In case of Japan, it is understood that Japan reflected an atmosphere of the temples in the Kangnam areas(江南 禪刹) in the Southern Song because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consists of the mainstream of Kyungjang(經藏). Since Buddhism was imported into the Three Kingdoms period, a facility to enshrine the Sutra had been an essential factor for the composition of a Buddhist temple. As mentioned above, the early Kyungjang(經藏) mainly consisted of 經樓, which devoted faithfully to the function as a simple storage, and, however, starting from the early Koryo era, 大藏殿, which grew into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for worship space, began to appear. When the Koryo dynasty suffered from a national crisis, it concentrated on a wood engraving of Daejanggkyeong in order to resolve difficulties by blessing of Buddhist power(佛徒) and built Daejangjeon(大藏殿) in many Buddhist temples for enshrining the complete. However, it is hard to discover the details on the method of record(書架方式) thoroughly due to the shortage of historical materials. It is considered that the new changes of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in the early Koryo era was resulted from 義天 and 曇眞, who visited the Kangnam(江南) areas in the Northern Song at that time. The Kangjeol areas (江浙) in the Northern Song, where Yeicheon(義天) and Dangjin(曇眞) traveled through, was the place in which Buddhism was very popular. With the beginning of a trend of constructing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it was the period that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was created in many places. It has a significant meaning that, during the Song dynasty period, nine out of ten Revolving wheel sturas were built in the Kangjeol areas(江浙). In other words, there are examples that since Yeicheon(義天) and Dangjin(曇眞) returned to Korea from Song,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had been built in Buddhist temples where their followers and acquaintances stayed. As the invasion of Mongolia intensified, transferring the capital to Kanghwado temporarily after the destruction of ChojoDaejanggkyeong(『初雕大藏經』), which was engraved on wood in the early Koryo era, the Koryo administration rushed into a wood engraving of Jaejoaejanggkyeong(『再雕大藏經』) and completed it. However, due to the shortage of historical materials, the actual condition and the detailed aspects on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related to Jaejoaejanggkyeong(『再雕大藏經』) can not be known. The tradition of Two Wheel, which enshrines two Revolving wheel sturas, was discovered in several Buddhist temples and there was an attempt to guess about the feature of the military officials regime. During the intervention of the Won dynasty, it is considered that Beopbo religion(法寶信仰, the Worship of the Sutra) was the most popular in the Koryo dynasty. With the active interchange between the Koryo and Won dynasty, Daejanggyeong imported from the Kangjeol areas(江浙) was enshrined in Koryo Buddhist temples and its examples were often discovered. The fact of creating Seungcheonsa(承天寺) Revolving wheel sturas, which was not able to be discovered in the records of Koryo, was discovered through the record of the Won dynasty regarding the fact of building Revolving wheel sturas. It is estimated that the interchange between two countries and of course the information on Revolving wheel sturas 건립 would far exceed the existing historical materials. The Queen of Ki from the Imperial Household of Won(元), who was originally from Koryo, and eunuch Koyongbong(高龍鳳) originally from Koryo as well took an active part as patrons representing the intervention period of the Won dynasty. They advocated Buddhist temples by supporting Mnnsusa(文殊寺), Bokwangsa(普光寺), and Jangansa(長安寺). Especially Bokwangsa(普光寺) and Jangansa(長安寺) were furnished with Revolving wheel sturas. By contrary, Koryo people realized Beopbo religion through various aspects in the Won dynasty, King Chungsun and his followers offered Daejanggkyeong in many Buddhist temples of the Won dynasty and furthermore supported to build Buddhist temple. In particular, King Chungsun ordered to build Hangju Heinsa(杭州 慧因寺) where Yeicheon(義天) stayed, and donate Daejanggkyeong and construct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Like this, it can be known that there was a clear interchange in both ways during the intervention of the Won dynasty, and the aspect of the interchanges between Koryo and Won Considering the examples of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during the late Koryo dynasty and the early Chosun dynasty, it is thought that Beopbo religion(法寶信仰) ran to extreme. To that extent, the classes, who participated in contributing Daejanggkyeong, showed the expanding changes up to a high official class compared to the previous era in which the Royal Family was central. Daejangjeon(大藏殿) of Yangju Hoeamsa(檜巖寺) is the representative example showing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from the late Koryo to the early Chosun, and its change gives the transition of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over the period from the late Koryo to the early Chosun dynasty at a time. In other words, when Naong(懶翁) built Hoeamsa(檜巖寺) Daejangjeon(大藏殿) in the late Koryo dynasty, the inside had a facility of Revolving wheel sturas. However, passing the early Chosun period, it is estimated that Revolving wheel sturas was removed, a Buddhist image was enshrined in the center of Daejangjeon(大藏殿), and built-in closets to enshrine the Sutra were remodeled by the method of installing them in the three walls. Through this fact, it is thought that the trend of creating Revolving wheel sturas remained until the late Koryo dynasty, and then later, entering into the early Chosun dynasty,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came to wane gradually. This is because that the changing process toward the method of enshrinement with a Buddhist image and the Sutra can be known through Hoeamsa Daejangjeon(大藏殿). Beopbo religion in the early Chosun dynasty became a motive to realize various Kyungjang(經藏) constructions. Daejangjeon(大藏殿), of course, built Kyungjang(經藏) in a form of Stupa, Kyungjang(經藏) in a form of a tower and so on. Yeonboksa(演福寺) Stupa obtained an effect combining not only virtuous deeds of constructing a tower, but also the deeds of Beopbo worship by enshrining Virocana(毘盧遮那佛), Daejanggkyeong, Stupa in each level. In the front gate of Kakrimsa(覺林寺) originated by King Taejo, Daejanggkyeong was enshrined and it can be considered as the beginning of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which modified Ceremony of Jeongdae(頂戴儀禮). The historical materials on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in the early Chosun dynasty came to decrease compared to the previous times and it is regarded as not only the shortage of historical materials, but also the reduction of the examples of construction actually. In addition, it is considered that the Japanese demand of the Sutra, which started from the late Koryo dynasty, came to decrease and consequently it caused to wane Kyungjang(經藏). The number of the existing Kyungjang(經藏) and the tendency of the Sutra plate(經板) enshrinement can be counted as the atmosphere, which made it possible to estimate in spite of the shortage of data. in the Eastern Asia culture, the major object of Beopbo religion became a copying(書寫) or the Sutra engraved(印刊) and the Sutra plate was nothing but a means to print the Sutra. Therefore it is very rare for China and Japan to take the Sutra plate as the object of worship among Kyungjang(經藏). However, the change of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occurred in Haeinsa(海印寺) in the early Chosun dynasty has the significant meaning that it raised the Sutra plate itself as the object of worship. Haeinsa demolished the existing Daejangjeon(大藏殿) during around the 1490's and constructed Jangkyungpanjeon(藏經板殿) targeting the Sutra as a main object. After the Imjin War,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was still appreciated as the essential facility, which Buddhist temples should equip in the late Chosun dynasty. With restoring Buddhist temples destroyed by a fire, a palace(殿閣) was constructed using a temple name such as Daejangjeon(大藏殿) or Haejangjeon(海藏殿). A new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appeared in the late Chosun dynasty can be Daejangjeon(大藏殿) in a form of a tower equipped with a T-letter-type plane. Currently historical materials discovered clearly are merely Songkwangsa Daejangjeon(大藏殿). However, it can be regarded as the concept of Jeongdae(頂戴) reflecting it to a tower because Naksansa and Haeinsa are equipped with the same T-letter-type tower. Ceremony of Jeongdae(頂戴儀禮), which appeared firstly by enshrining Daejanggkyeong in the front gate of Kakrimsa in the early Chosun dynasty, was accepted as Daejangjeon(大藏殿) of a T-letter-type tower after the Imjin War. It can be known that the first sublime of the Sutra, which would be enshrined in Kyungjang(經藏), was to put the printed Sutra into the Sutra box(經函) and to enshrine this in the bookshelf and this mode was the main method. A mode of a bookshelf was divided into two modes of a built-in referring a closet, and a revolution referring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Regarding the arrangement of Kyungjang(經藏), Daejangjeon(大藏殿) took a place second to the main Buddhist Sutra(主佛殿). Some Buddhist temples, confirmed as the one equipped with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took a place back inside of the temples or next to the important facilities not easy for common buddhists to access. This implies that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might not be pervaded to common Buddhists. There were many planes of 3×1, and the sites of Youngkuksa(Jireuksa) is the building site where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of 1×1 was installed and provides an important clue for the study on Revolving wheel sturas(轉輪藏) in the Koryo dynasty. Although such data able to estimate elevation are more rare, Daejangjeon(大藏殿) with 3×1 levels can be derived from the elevation of Keukrakjeon in Bonjeonsa. With the record about the two-story Daejanggak(大藏閣) in Sillreuksa, it can be estimated that there were various elevation forms. It is estimated that the construction form of Daejangjeon(大藏殿), in a form of T-letter-type tower, was a form of Daejangjeon(大藏殿) designed newly because it was not discovered yet in other countries. In terms of arrangement, in case of China, from the Song dynasty to the Myong dynasty, a palace(殿閣) related to Beopbo religion was placed in the west and showed the feature of placing in front of the main Buddhist Sutra. However the examples of Korea show the similarity in the east and west, and so it is required to examine in a new aspect. Daejanggkyeong is valuable in that it overcame the aspect of the Buddhist Sutra. The aspect of the cultural interchange developed by the medium of Daejanggkyeong and the active human interchanges are enough to explain the features and distinction of the Buddhism culture of the three countries in the Eastern Asia. the interchange of Daejanggkyeong is a very important medium, which is connected to the cultural interchange between the Song dynasty and the Koryo dynasty, and the Chosun dynasty and Japan. Through this interchange of Buddhist Sutra, it is estimated that it became an opportunity to share Kyungjang(經藏) construction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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