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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Ricoeur의 이야기론과 신학

Title
Paul Ricoeur의 이야기론과 신학
Other Titles
On P. Recoeur's Narrative Theory and Theology
Authors
김희란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기독교학과
Keywords
Paul Ricoeur이야기론신학Theology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We manifest eventually ourselves through our own word, but the word that we said is not truth. We can speak only the word that is distorted and disguised. In this way, we communicate each other with the word that has unjust profit or concern in our consciousness that we can never know ourselves. So we can not do perfectly free communication that doesn't have any limitation and bounds. Unfortunately, People can never see and also understand rightly themselves who are systematically distorted. thus people don't know themselves as Socrates said. It means that descartes's cogito, 'I think, I am (cogito, ergo sum)', is not true. That is, myself is not myself that I think because my consciousness doesn't include reflection. According to Ricoeur, reflection is not direct cognition as intuition. Myself can't be cognitive directly. The cognition is something that didn't do any validation. So, we can say that direct consciousness is empty thing, that is, false image. In this sense, I can't see and know myself. Direct cognition is narcissism, false consciousness, and a disguised mask that deceives the self. For the old self to gain the new self, I have to take a long detour because I can't understand rightly myself with my cognition that is covered with narcissism. Jean Nabert said that myself arrives at myself through the representations and doings, works and institutions, and monuments which objectified self-consciousness. Recoeur, especially, insists that the self gains itself through the text. He takes the roundabout way via mediation of the text for reflection. He said, first of all, testimony of the Bible widens self-understanding by appropriation of the meaning in front of the Bible text as the already validated truth. The self must travel the world of the text to find itself. It is recognized by the text's narrative. But self-understanding via the narrative of the text doesn't take a short cut. Recoeur's way on self-understanding takes many detours because self can't be reached by direct cognition as well as romantic reading. Understanding has to take the approach to scientific and objective explanation, that is, structuralism. The very point where philosophical hermeneutics meets scientific structuralism makes a big fight. Conflict between them produces clear and full understanding from naive and illusionary understanding. Moreover, understanding is widened by metaphorical hermeneutics. Metaphor helps to find the solution of conflict between the new meaning of the text and conventional meaning in our lives. The tension between new and old meaning can be overcome with metaphor. So, the meaning of the text can be manifested at the present horizon. But understanding doesn't catch author's intention, the first receiver and the first context. Hermeneutics appropriates the issue that the text refers to. Reference of the text aims at the significance that is called the world of the text. In short, hermeneutics appropriates the meaning (significance) of the text. Appropriation starts the conquest of meaning itself on the text through the fight against the distance of cultures. By fusion of horizons, the meaning of the text is mine free from the limitation of the first context Thus, the meaning of the past can be the meaning of one's life at the present because hermeneutics revives the meaning of the pas-t(tradition). Text is recontextualized in the present context. At the very point, we can know that hermeneutics is connected with the time. Hermeneutics is the time of the meaning. In simple words, It is the time to struggle for new things against old things. Hermeneutics isn't an objective and material time. It is an objective time that passed and doesn't exist. The passed time is nothingness, meaninglessness as crusaders went to Jerusalem in the cause of search for empty grave. What we have to search is the meaning of the event, in other words, time of mind. The meaning rises from passed event. Hermeneutics conveys meaning from the past event to the present time. In the end, the self sees itself through the text. The self gives up itself which hides behind unconsciousness because the disguised self is disclosed by text. The self that is seized in illusion destructs and then finds itself in the true sense through letting go into the narrative of the text. The self doesn't disguise itself any more. New self-understanding mediates the text. Understanding of the text ends up at the point that the interpretation of the text makes us sense our resident world. In this sense, the narrative of the text doesn't close but open our lives to the present. Narrative is to be vivid narrative in our lives. A living narrative is not forced to bind up the changed world with literal sense but prefers living with flowing meaning of the text. However, we cannot fulfill the meaning in our lives by our will. In spite of this weak point, Recoeur says that the dawn of the eschatological hope will break on this day when a new subjectivity practices meaning of the Bible's narrative.;사람은 결국 말을 통해 자기를 드러낸다. 그러나 말속에 담긴 것은 진리가 아니다. 왜곡되고 위장된 관심이 말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득이 들어간 언어가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계도 속박도 없는 완전한 의사소통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왜곡된 자기를 제대로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의 지적대로 사람은 자기를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거짓이라는 얘기다. 생각하는 자기가 바로 자기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거기에는 반성이 들어 있지 않다. 리쾨르에 따르면, 반성은 직관이 아니다. 자기는 곧장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관은 검증(validation)되지 않은 것이다. 직접적인 의식은 텅 빈 것, 곧 허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직접의식은 나르시시즘이고 거짓(허위) 의식이며 자기를 가장(disguise)하는 것이다. 의식은 나를 직접 알 수 없기 때문에 긴 길을 돌아가야 한다. 장 나베르에 따르면, 자기-이해는 그것을 객관화하는 표상과 행위, 작품과 제도 그리고 기념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리쾨르는 특별히 텍스트를 매개로 해서 자기-이해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성서의 증언이 이미 검증되어진 진리로서 그 의미를 자기화하는 것이 자기-이해를 확장시킨다고 말한다. 자기를 직접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이야기를 매개로 해서 다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텍스트(이야기)를 통한 자기-이해의 길은 결코 지름길이 될 수 없다. 리쾨르가 말하는 자기-이해에 이르는 길에는 돌아가는 길이 많다. 자기를 직접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감상적인 텍스트 읽기를 통해서 자기-이해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는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설명, 곧 구조주의에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철학적 해석학이 과학적인 구조주의를 만나면서 싸움을 일으키게 된다. 그렇지만 충돌하면서 순진하고 불분명한 이해에서 명확하면서도 충만한 이해를 낳게 된다. 이해는 은유에 의해서 더욱 확장된다. 은유는 거짓 의식에 둘러싸인 낡은 관습들과 텍스트를 통해 얻은 새로운 의미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해결하는 발견을 돕는다. 은유를 통해서 옛 것과 새 것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텍스트의 의미를 현재의 지평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최초의 독자나 최초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해석은 텍스트가 겨냥하는 것을 잡아서 내 것으로 삼는 것이다. 텍스트가 겨냥하는 것이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 곧 텍스트의 세계이다. 한마디로 해석은 텍스트의 의미(세계)를 자기화하는 것이다. 자기화는 것은 문화적 거리와 싸우는 것을 통해서 텍스트의 의미 자체에 접근하는 것이다. 지평 융합을 통해 처음에는 낯설었던 지시(reference)가 텍스트의 상황적 지시의 한계를 벗어나서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의미가 현재의 내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은 과거(전통)의 뜻을 살리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텍스트를 재문맥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해석이 시간문제와 결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석은 뜻의 시간이다. 간단히 말해, 건네는 시간과 새롭게 하는 시간이 다툼을 일으키는 시간이다. 해석은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다. 객관적인 시간은 지나가 버리고 지금 없다. 지나가 버린 시간적인 사건은 헛된 것이다. 십자가원정에서 군인들이 빈 무덤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쓸데없는 짓이다. 되찾아야하는 시간은 정신의 시간이다. 사건이 주는 의미이다. 과거의 사건은 사라졌지만, 그 의미는 현재의 시간에서 부활한다. 해석은 과거의 사건이 주는 의미를 지금의 시간에 개방시킨다. 결국 우리는 텍스트를 매개로 해서 자기를 알게 된다. 텍스트가 모순 속에 갇힌 자기의식을 바라보게 해서 더 이상 자신을 감추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환상 속에 갇혔던 의식은 붕괴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를 텍스트의 이야기 속에서 찾게 된다. 더 이상 자기-의식을 감추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개방시킨다. 새로운 자기-이해가 텍스트를 매개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텍스트 이해가 텍스트 읽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주하는 세계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의 이야기는 닫힌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삶에 열린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텍스트(또는 성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변하는 세상을 문자에 잡아 매어두려는 몸부림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변해도 이야기의 뜻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로는 그 뜻을 다 실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쾨르는 새로운 주체가 성서 이야기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바로 종말론적 희망의 서광을 오늘에 비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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