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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下代의 在唐 新羅人에 대한 고찰

Title
新羅 下代의 在唐 新羅人에 대한 고찰
Other Titles
(A) Study on the Shilla people in Dang(唐) during the latter period of Shilla
Authors
김태희
Issue Date
1997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Keywords
신라 하대좌당신라인사회생활학
Publisher
梨花女子大學校 大學院
Degree
Master
Abstract
The existence of the Shilla(新羅) society in Dang(唐) was evolved from the development of shipping business and commercial trade in the latter period of Shilla(780-935). For the improved marine trade between Shilla and Dang, Shilla people migrated to east coast of Dang. They were incorporated into the east coast where the wandering people from Koguryo(高句麗), Bakjae(百濟), and Korea were already settled, since it was convenient for their trading business activities. Within the Dang social system, Shilla, people managed to run autonomous community and kept their own language and customs. They influenced the growth of Korean history with their various career activities such as interpretation, the military, shipping, and trading business. They expended the Silk Road by trading and forwarding the Arabian merchandise to Shilla and Japan which was improted to southern Dang by Arabian merchants. The Shilla people in Dang also influenced the foreign students and the monks. Active Shilla foreign students and the monks, after returning home from all the area of Dang, overcame contradiction and confusion of ancient Shilla; thus, providing spiritual direction for the ancient Shilla's transformation into the medieval society. The Shilla people provided great support for them in many areas including transportation and protection. The ideology of the foreign students and the monks was formed while studying abroad. In conclusion, the evolution of the ancient society to medieval society in Korea was established by those foreign students and the monks with the great help of the Shilla people in Dang.;在唐 新羅人 社會는 그 시대의 상황에 적응하여, 그리고 시대의 요구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었다. 唐은 安史의 亂으로 경제의 중심이 江南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唐의 개방적인 대외정책과 연결되어 당의 남부지역은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또한, 신라는 통일 후의 산업발달과 빈번한 對唐交流로 생활수준이 향상되자, 점차 朝貢貿易 만으로는 그 對唐文物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었다. 여기에 末期로 갈수록 혼란해지는 羅唐의 정치상으로 인해 私貿易에 대한 통제도 약화되어 갔다. 이에 활발한 對唐交易을 위해 성립된 것이 재당 신라인 사회였다. 재당 신라인사회의 구성원들은 求食者, 遺民 및 貿易商 등으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긴 시간을 두고 중국의 內地에 정착하게 되었다. 유민 등의 오랜 정착자들이 登州를 중심으로 하여 북부에 정착한 것과 달리, 무역을 위해 唐으로 들어온 신라인들은 아랍상인들과의 교역에도 편리하고 신라나 일본 등으로의 진출에도 편리한 동부연안의 남쪽에 집중하였다. 唐 蕃坊制度의 一種으로서 성립된 新羅坊은 唐 정부와는 지방통치체제와 隣保 制度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 안에서 자치권을 향유하고 있었다. 당 동부 연안에 집거한 신라인들은 唐의 制度와 社會에 적응하면서도 신라적인 생활풍습과 언어를 유지하며 신라인으로서 살아 갔다. 唐 동부연안의 신라인들은 軍人, 通譯, 運送業者, 貿易商 등 여러가지 생업에 종사하였다. 이 외에도 당 각지에는 신라인 留學生(僧)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은 唐 유학을 통해 儒敎政治思想, 禪宗 등의 先進思想을 신라로 전파하고, 개혁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이러한 유학생들은 재당 신라인의 운송활동과 보호에 의해 입당유학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재당 신라인들은 당의 내륙으로부터 해상으로 신라, 일본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운송망을 통해 활발한 무역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역활동을 통해 盛唐의 훌륭한 문물 뿐 아니라 아랍물품과 문화까지도 신라와 일본에 보급함으로써, 初期 海上貿易을 極東까지 확장시켰다. 즉 서방세계에 신라의 존재를 알리고 신라와 일본에 아랍의 물품과 문화를 전래하는 등 그들의 활동은 이전까지의 해상 실크로드를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론적으로 재당 신라인 사회의 성립은 新羅 下代에서 중세사회로 移行되어 가는 과도기와 세계무역의 확장에 적응하여 생겨난 것이었으며, 그들의 활발한 활동은 중세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하는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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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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