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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蕙錫의 繪畵 硏究

Title
羅蕙錫의 繪畵 硏究
Other Titles
(The) Painting of Rah, Hye-Suk : On the Relationship between her Paintings and her feminism
Authors
안나원
Issue Date
1998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Keywords
나혜석회화페미니즘미술사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류서양화가이자 여류문학의 개척자로서 개화기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적적인 견해와 부정적인 시각의 상반된 두가지로 엇갈리고 있다. 방종으로 몰락한 유명무실한 문사하고 보는 것이 부정적인 견해이고 긍정적인 시각에서는 근대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 가부장제의 제단위에 바쳐진 제물로 평가하고 있다. 나혜석에 대한 미술사 분야에서의 연구는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의 측면에서 주로 다루어져 왔다. 본 논문의 목적은 나혜석의 회화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로써 나혜석을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기하고 나혜석이 한국근대미술사상 어떠한 위치에서 논의되어져야 하며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정립에 어떻게 기여하였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유교를 근본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남존여비 사상에 의해 여성의 순종이 천리화 되었고 여성의 교육과 활동을 규제하는 많은 윤리규범이 만들어졌다. 근대초에는 구한말의 개화사상과 더불어 새로 유입된 천주교의 만인평등설과 동학의 인내천시상의 여성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었고 이에따라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미술을 공부한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개화된 의식을 가진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나혜석은 가정을 위한 봉사와 희생을 부덕으로 여기고 자신의 일을 포기하였던 많은 여성들의 자각을 촉구하였다. 이것은 나혜석의 소설과 수필을 비롯한 문학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문학계에서는 나혜석을 김일엽, 김명순과 함께 근대초 여성해방에 선구적으로 앞장선 여류문학가로 평가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문학을 통해 강력하게 주장한 여성해방의 논리는 첫째, 억압없는 성의 구현, 둘째, 도덕적으로 위장된 여성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셋째, 남녀평등사상, 넷째, 여성교육과 사회진출의 요구이다. 문학을 통해서 드러난 나혜석의 페미니즘 의식은 자유주의 사상과 계몽주의 사상을 기초로 한 인본주의 페미니즘이다. 나혜석은 외래사조와 외국여성의 삶을 소개하며 부르주아 계층이 신여성을 대상으로 계몽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나혜석은 사회구조적 인식의 결여, 엘리트 민중관, 가부장제의 시각에서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모순을 범하고 자신의 선각적인 여성해방사상을 사회적인 범주로 확대시키지 못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는 한계를 보인다. 나혜석의 회화는 시기별로 화풍이 다르게 나타난다. 동경유학 이후부터 세계일주 이전까지의 (1918-1926) 작품은 일본에서 습득한 아카데미즘과 인상파가 절충된 화풍을 보인다. 세계일주 및 유럽 체류 시기의(1927-1929) 작품 경향은 인상파 화풍위에 야수파 화풍과 입체파 화풍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귀국이후의 (1930-1935) 작품에는 인상파 화풍의 작품과 파리시절의 스케치로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 그리고 기법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 등 다양한 경향이 공존한다. 나혜석이 활동하던 시기는 페미니즘이 미술에 도입되기 이전이었다. 미술사상 의도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거나 페미니즘 의식을 반영한 정치적인 성격의 작품이 제작된 전례는 없었다. 나혜석은 아카데미즘과 인상주의 화풍을 습득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야수파와 입체파를 소화하기 위한 조형실험을 하였다. 19세기 이전의 구미 여성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나혜석의 작품에서도 본격적인 페미니즘의 성향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1918년∼1926년 사이에 제작된 몇점의 작품에는 페미니즘 의식이 반영되어 드러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는 문학에서도 도전적인 페미니즘 의식이 열정적으로 강조되었다. 페미니즘 소설의 시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경희」가 이시기에 집필되었고 남성의 노리개로 운명지워진 여성의 지위를 빗대어 노래한 시 「인형의 집」도 같은 시기에 발표되었다. 이밖에도 나혜석은 「이상적 부인」,「생활개량에 대한 여자의 부르짖음」등과 같은 수필을 통하여 여성의 자각을 촉구하였다. 나혜석은 여성의 의식계몽이라는 사명을 위해 만화형식의 판화 매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 풍경화에서는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재현하거나 도시민의 생활상을 통해 빈부의 격차를 시각화하였다. 본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새로 발굴된 4점의 판화는 공통적으로 일상의 한 장면을 포착하여 화면에 담은 시대풍경화이다. 새로 발굴된 판화들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페미니즘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혜석이 순수미학을 추구하는 회화와는 달리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는 판화를 매체로 의도하는 바를 전달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미술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여성화가로서 나혜석은 누드화를 통하여 당당하고 능동적이며 진취적인 여성상을 제시하였다. 나혜석에게 있어서 자화상은 자아를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것은 동시대 여성들의 자아각성을 촉구하는 하나의 실천적인 본보기로 해석된다. 나혜석의 작품 43여점 중에서 페미니즘의 성격이 보이는 작품은 19점이다. 판화 2점에서 명확한 페미니즘 의식이 반영되었다. 이 밖에도 여성의 노동과 서민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이 10점이고, 누드화 6점과 자화상 1점에서 계몽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회화가 자의식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나혜석의 작품은 근대성을 가진다. 나혜석은 서화협회전에 참여하고 개인전을 개최하는 것 외에는 1921년부터 1932년에 걸쳐 조선미술전람회에 꾸준히 출품하는 적극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서양화가 유입되고 화단이 정립되는 과정상 겪어야 했던 사회적인 몰이해와 어려움으로 고회동을 비롯한 많은 남성 서양화가들이 절필을 하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혜석이 여성으로서 전문적인 화가의 길을 선택한 자체를 페미니즘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나혜석은 이후의 수많은 여성 직업작가들에게 하나의 프로페셔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나혜석은 서양화라는 매체가 유입되는 초창기의 한국화단에 남성과 함께 여성으로써 동등한 첫일보를 내딛는 미술사상의 성과를 이룩해 내었다. 또한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한국의 페미니즘 미술 운동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인 배경이자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나혜석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이해를 위해 다각적인 방면에서의 입체적인 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논문은 나혜석의 회화를 조명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기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앞으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한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본다.;Rah, Hye-Suk, the first western painter and the forerunner of the women's literature in Korea, is recognized today as a symbolic figure of the feminist movement at the time of the national opening toward the west. But opinions about her are divided between the positive and the negative. The negative view on her says that she is nothing more than a decadent diletante, a minor literati of no real consequence. On the other hand, people, who have positive view on her, portrait her as the pioneering feminist of the early modem time, who was scapegoat4 by the conservative patriarchal establishment at the time. The researches on Rah, Hye-Suk, up to now in the history of art, were primarily focused on the aspect of her being the "first female western painter." My goal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her paintings and her feminism, and thereby I will suggest a new view on Rah, Hye-Suk as to what place she should occupy in Korean modem art history and assess how she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feminist art in Korea. In the Chosun era when Confucianism reigned as the principle ideology, the obedience by women toward men was a kind of divine principle under which many rules restricting the social activities and the education of women were made. In the late 19th century, along with the new ideology of national opening, the introduction of the "all men (in the sense of humans, male and female) equal" doctrine of the Christianity and the "In-Nae-Chun(人內天)" ideology of Dong-Hak (東學) initiated the recognition of the importance of educating women. Henceforth, institutions for the education of women began to crop up. At this period, the women who studied art at these institutions were mostly of the high upper class of the society, among which the new ideas from the west were fairly prevalent. Rah, Hye-Suk appealed to women to be conscious of their plights of unconditionally servicing to and sacrificing for men. This feministic aspect of Rah, Hye-Suk is well documented in her novels and other literary works. Along Kim, Il-Yop and Kim, Myung-Soon, Rah, Hye-Suk is assessed in the field of literature as the woman writer pioneering the liberation of women in the early modem era. The ideas they expressed through their writings could be summed up as the following: the unrepressed sexual freedom, the liberation from the hypocratic repression of women, the equality of men and women, and finally, the education of and the social participation by women. The dominant feminist idea of Rah, Hye-Suk revealed through her literary works are a humanistic feminism based on her liberalism and the call for enlightenment. Rah, Hye-Suk, by introducing the western ideas and the life-style of the western women, worked mainly toward the enlightenment of the upper high class women. However, Rah, Hye-Suk's lack of awareness of the social structure, eliticism, and her feminism from a basically partriachal perspective, reveal a self-contradiction and her limit as a full-blown feminist. Rah, Hye-Suk's paintings show different characteristics through the times. The works at the period from her study in Tokyo to before she circled the world (1918-1926) show a mixture of the academic elements aquired during her study in Japan and some elements of the impressionism. At the period of her world travel and sojourn in Europe (1927-1929), her works reveal a basically impressionistic tendency with some elements of fauvism and also some cubism. After coming back to Korea (1930-1935), her works include impressionistic paintings, some sketches from her stay in Paris, and some minor under-accomplished works. When Rah, Hye-Suk was active as a painter, it was before the feminist influences were introduced in art. There were art-historically no precedent works with political intention emphasizing feminist ideas. Rah, Hye-Suk tried hard to aquire the academic and the impressionistic styles as well as producing some excercise sculptures of the fauvistic and cubist styles. But like most of the western female painters before the 19th century, it is hard to find outright feminist elements in her works. However, some works made during the period from 1918 to 1926, exceptionally do seem to show some feminist consciousness. Not coincidently I believe, her literary works during this period show very strong feminist consciousness challenging the establised values of the society; it was this time around she produced the novel, "Kyong-hee", which is highly lauded as the first Korean feminist novel, as well as other novels like "Doll's house" depicting the life of women as men's toys. Also through her other literary works such as "Ideal wife", and "Woman's call for improving life," Rah, Hye-Suk called for women's conscious awakening. Rah, Hye-Suk, in her intentional use of the medium of cartoon print-making, shows her goal toward the woman's conscious awakening. Rah, Hye-Suk's political consciousness, however, is not limited to feminism. Rah, Hye-Suk shows, through her landscape paintings, the ordinary farmer's life to emphasize the material. disparity between the rich and the poor and the life of the socially powrless people. During my researches, I have found four new prints by her, depicting a segment of ordinary people's life. Through her nude painting, Rah, Hye-Suk suggests a new image of brave and proud women. For Rah, Hye-Suk, self-portraits were a means to recognize her own self. The activities of self portraiting could also be seen as the practicing showcase, calling for the realization of self by the women. Of Rah's 43 paintings, there are 19 that show feministic characteristics. Especially two prints clearly reveal her feminist consciousness. Other works include 10 painting depicting the labors by women and the ordinary life of the ordinary people, 6 nude paintings and 1 self-portrait that show the enlightening characteristics. Rah, Hye-Suk's work show modernity in that her paintings were used as a means to express the self. Apart from participating in Suhhwa-hyuphoe-jun(the exhibition by the Association of Painters) and doing some personal exhibitions, she continued to contribute her works to Chosun Art Exhibits during the period of 1921-1932. This is in contrast to the male painters like Koh, Hui-Dong who quit painting on the ground that the newly introduced western-paintings were unwelcomed by the Korean public. On this persepective, that Rah, Hye-Suk chose to become professional painter could by itslef be seen as a practicing of feminism. Rah, Hye-Suk is presented to the future women artists as the prototype of female professionalism. At the early era of western painting in Korea, Rah, Hye-Suk achieved the feat of being equal to men within the artists' circle in Korea, a no feeble achievement considering the conservative anti-woman Korean society at the time. Also, she is assessed as a historical background, as well as the motivation for the newly vigorous feminist movement in the 1980's. I believe my paper is significant in that it suggests a new perspecitve on Rah, Hye-Suk's painting. I expect a lot of following researches on this 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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