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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像 手印 硏究

Title
佛像 手印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f Buddhist Mudra
Authors
김미진
Issue Date
1997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Keywords
불상 수인인도중국한국미술사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手印은 불상의 성격을 반영하므로 시대에 따른 불교교리나 신앙 형태를 미루어 알게한다. 그래서 각국의 초기 手印을 살펴 그 성격을 안다면 당시의 불교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도·중국·한국 세 나라의 초기 불상은 여러 手印 중 특히 禪定印과 施無畏印을 많이 취하였다. 이는 선정인과 시무외인이 불교 전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만한 의미가 있었음을 뜻한다. 이에 본 論文에서는 禪定印이 불교초전시기부터 일정기간만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이유와 중국, 한국에서의 施無畏與願印의 확산과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인도의 初期 手印부터 중국, 한국의 初期 手印을 연구하였다. 인도의 초기 불상에서는 수인의 초기 형태가 나타나는 만큼 항마촉지인, 선정인, 전법륜인, 시무외인의 4가지 수인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施無畏與願印이 인도에서부터 도상적 형태가 확립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해 필자는 인도에서는 施無畏印에 옷자락을 잡은 왼손을 手印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일련의 고찰 끝에 施無畏與願印의 결합은 중국에서 이루어져 본격적으로 발달했음을 제안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왼손에 옷자락을 잡은 施無畏印이 施無畏與願印과 같은 시기에 다수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왼손에 옷자락을 잡은 施無畏印과 施無畏與願印은 별개의 圖像임을 반증하는 것이며 간다라에서 비롯된 옷자락을 잡는 형태가 北魏를 지나면서 점점 사라지고 施無畏與願印의 通印이 그 자리를 메꾸어 나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인도에서 왼손 위에 오른손을 겹쳐 다리 위에 올리던 禪定印은 간다라에서 많이 제작되어 탁실라, 핫다. 호탄 등지를 통해 手印의 형태가 인도의 것과는 정반대로 오른손 위에 왼손을 두는 형태가 되었다. 禪定印의 경우는 서역불상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런 형태는 중국 禪定印에 이르러 그 위치를 배에 대는 것으로 큰 변화를 일으켰다. 禪定印을 다리 위가 아닌 배에 대는 것은 小金 銅佛의 범본제작, 塑造 浮彫像에서 표현할 때의 어려움 때문이거나 禪定印을 보다 더 강조하여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한 표현태일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원래의 인도 手印 형태는 중국에서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고 한국의 삼국시대 불상은 그러한 변화된 형태를 수용하였다. 삼국시대 禪定印의 특징은 중국의 변용된 手印 형태인 오른손을 보이며 배에 붙이고 있고 거의 裳懸座로 표현되었다. 예외로 군수리 출토의 滑石製 禪定印坐像만이 왼손을 보일 뿐이다. 삼국시대 후반기 이후에는 퇴보한 형태, 즉 옷자락으로 손을 가리는 형태가 몇 보일 뿐으로 선정인은 삼국시대의 초기에만 그 조상 예가 몰려 있다. 또 施無畏與願印은 여래상뿐만 아니라 보살상에서도 手印으로 확립되는 회통적 성격을 보인다. 인도나 중국의 초기 불상에서 보살상이 持物을 취하지 않고 手印만을 취한 예는 드문 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초기의 보살상이 施無畏與願印을 결하는, 완전한 禮拜對象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불, 보살을 두루 회통한다는 '通印'의 의미를 한국불상이 가장 충실히 반영했음을 보여준다. 思惟印은 手印보다 그 자세 자체에 의미와 상징이 존재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이 수인은 처음에 樹下覲耕 설화와 관련하여 발생했는데 太子思淮像, 降魔成道의 부분, 愛馬別離, 佛說法圖의 부분을 차지하는 다양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 수인을 취한 불상은 인도의 太子思惟像의 개념 및 사유의 고뇌를 표현한 보살 형태에서 중국의 태자사유상, 교각여래좌상의 협시보살, 碑像形態의 단독상 등으로 나타났는데 한국에서는 단독예배상으로 나타나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불교조각으로 표현되기에 이르렀다.;The Mudra(手印) defines the symbol of Buddhist statue. Since its infancy, there are various Mudra but the most common is called Dhyana-mudra(禪定印) and Abhaya-mudra(施無畏印). This study will try to explain the reasons for the initial popularity of the Dhyana-mudra with early Buddhism, then its demise and that time's popularity of the Abhaya-Vara-mudra(施無畏興願印) in China and Korea. Against common thinking, the Abhaya-Vara-mudra did not originate in India. Upon intensive research, the origin of the Mudra is still a mystery. So the old thinking that Abhaya-mudra and Abhaya-Vara-mudra originated from the same location in India could be a mistaken conclusion. Even now the common belief is that Abhaya-Vara-mudra came from India. The Abhaya-mudra in India is portrayed as the right hand is held up as in a hello greeting and the left hand is pinching the clothes. But this left hand position is not a Mudra. It was thought that as time went by, sometime in the Gupta Period, the left hand was slowly lowered, step-by-step until finally it was positioned straight down on its left side with its palm open facing forward and finally pinching the cloth off the left thigh. Because the Abhya-mudra and Abhaya-Vara-mudra statues are so abundant in China within the same time frame, the conclusion is that the Abhaya-Vara-mudra originated in China. So we may assume that the Abhaya-Vara-mudra and the Abhaya-mudra are different iconography. Now let's talk about the Dhyana-mudra. The method used in researching the Dhyana-mudra was different from that of researching the Abhaya-mudra. The Abhaya-mudra's focus was matching it to the Abhaya-Vara-mudra in developement and form. The Dhyana-mudra's method of research was following the changes of the Mudra with emphasis in India and China. The Gandara Period in India portrays the Dhyana-mudra position with the left hand extended in front of the navel, then the right hand is placed on the left. As the Dhyana-mudra moved from a country to other countries, Taxila to Hatta to Khotan, the gesture reversed sides. The left hand is placed on the the right, as the Dhyana-mudra in China. Instead of the open palm resting on the thigh, it developed into the arm being draped across the stomach in a vertical position. There are two possible explanations for this change. One is that the mold to make the statues was a little difficult to design with the hand of the thigh. The other is that the last change was more prominent and outstanding than the previous one. Up to this point, the Dhyana-mudra had many face-lifts. It arrived in Korea with all its changes and forms. A characteristic feature of the Three Kigdoms'(三國時代) Dhyana-mudra, like that for China's, is the right hand is distinctly shown and the other hand lies across the stomach. We can say that the Mudra of Korean buddhist statue, "Abhaya-Vara-mudra(施無畏興願印 = 通印)", apply to every statue. As in the case of "Sa-You-In(思惟印)", it is a Mudra that has little meaning of symbol but the statue itself has symbol. You can see the Sa-You-In position from a statue called 'Tae-Ja-Sa-You(太子思惟)' statue. This statue originated in India and was copied in China. It is said that the most beautiful version of this statue is her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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