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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御眞에 관한 硏究

Title
朝鮮時代 御眞에 관한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the Ub-Chin(King's Portraits, 御眞)in the Chosun Dynasty : based on analysis of Uigae (儀軌)
Authors
金成喜
Issue Date
1989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Keywords
조선시대어진미술사학의궤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In the Chosun Dynasty, the manufacturing "Uh-Chin" was vigorous than in any other age and its record can be found in the documentary record such as Sung chung Won Il Kie(承政院日記), ChoSun Wong Cho Shillok(朝鮮王朝實錄) and Uigae(儀軌). Based on a complete investigation and analysis of Uigae expecially the chapters of Cha-Mok(座目) and Sang-Jeon(賞典), it presents and discovers the names of the painters who participated in production of Uh-Chin. This work helps to a great extent to understand the briskness in production of Uh-Chin and the symbolic significance of such Uh-Chin and the activities of painters who participated in production of Uh-Chin that period. And by putting Cha-Mok into a chart, it presents many painters and their activities who have been unknown. At the same time, by putting Shi-il(時日) into a diagram, it presents the details of production process of Uh-Chin. The production process of Uh-Chin has some differences between Do-Sa(圖寫) and Mo-Sa(模寫) on the point of procedure of Bong-An(奉安). Comparing with the portraits of men of noble birth or the aristocratic class, the existing drawings fewer than those, therefore, there is insufficient data in researching them somewhat, however, it can be said that the portraists of Kings give us the moment to observe the highest level of style of painting of portraits then. That is, "Uh-Chin" were manufactured, in every Dynasty, by decendants to the memery of their ancestors and under the faith to succeed their spirit for all ages and attempted to adore their ancestors as the eternal god. Regarding etymoligy, it was called "Uh-Chin" during the Age of "Suk Jong", and there were "Do Sa", "Mo Sa" in kinds. Also, in the pictorial thesis, '"Uh-ChiN" belongs to a portion of the portraits, and the principles of "Chin" deprived from the meaning of genuine, which was also meant essential, and for human being, this meant the truth of mystery, nature and invariability. Accordingly, "Chin" has the meaning to grasp the invariable genuine which exists inside the objective, character in the portrait. Thorought screening the production process, the outline of Uh - Chin production, together with the names of the painters employed by each King, are discovered and presented. Systematic and techinical process concerned are also described. Surviving Uh-Chin of significance, despite the fact that many are in the form of manual reproductions and that original copies are badly burned and otherwise damaged, are carefully analysed through the discovery of their date of production and the names of the leading assistant painters invoked. Though these analysis, it pressents that Uh-Chin has reality as Real Landscape Paintings. So Uh-Chin must be estimsted as classical realism in Korean Paintings.;조선시대 어진은 제작된 숫자에 비하여 극소수가 현존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화작품들이 유작만 남아 있는 상항에 비추어 볼 때 어진은 당시 이것이 제작된 始末이 모두 儀軌와 謄錄에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朝鮮實錄 그리고 承政院日記 등에 서술되어 있으므로 유물사료와 문헌사료가 공존하고 있다. 때문에 어느시대 어느작품보다 연구해야 할 가치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진에 관한 기초조사와 연구가 一次 진행된 바 있으나 사실상 儀軌와 謄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규장각·장서각에 있는 영정모사도감의궤·등록을 모두 조사함으로써 우선 문헌사료의 맥락에 대한 정리를 Ⅱ장에서 시도하였다. 그 결과 Ⅲ장에서는 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직제와 士大夫 畵員들의 역할과 人名을 座目, 賞典, 기타 公文書 등의 내용을 정리함으로써 밝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어진이 제작되는 과정을 時日條를 통하여 단계별로 내용을 圖寫와 模寫別로 나누어 日程表를 作成하여 확인함으로써 節次上의 차이와 製作過程의 細目을 밝혔다. 이상과 같은 작업을 통하여 어진제작을 둘러싼 시대적배경의 문제가 제도적 맥락을 중심으로 대요가 어느정도 구체적으로 밝혀진 셈이다. 그러나 회화사 연구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진자체가 지니는 인물화(초상화)로서의 회화적 가치라고 생각된다. 때문에 Ⅳ장에서 전신좌상인 태조와 고종, 그리고 반신상인 영조의 어진의 구도와 필법, 제작기법에 관하여 분석해 보았으며 특히 채색기법과 용필, 재료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현존 어진을 분석한 결과 한가지 제안하게 되는 사실은 이미 서구회화사에 있어서 초상화는 사실주의 회화의 기초가 되어 왔다고 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조선시대 어진은 오늘날 한국화단에 어떠한 思潮형성에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와같은 인식의 단점은 기법상에 있어서도 윤곽선의 처리방법이 서구의 구성주의나 초현실주의 그것 못지않은 현실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진이나 초상화에 나타난 부위별 윤곽선의 처리기법과 색의 조합방법은 더 이상 계승이 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과 같은 몇가지 사실들로 미루어 조선시대 어진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면 우선 이것이 조선시대의 특수한 사회적 요구 즉 제사를 위한 神作製作이란 2次元에서 이루어진 것이 였으므로 오늘날 인물화의 창작과정과는 상당한 가치구조와 형식, 절차상의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제작과정에 많은 신하들의 봉심절차가 따르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무엇보다도 사실성이 강하게 요구되었던 것이었으나 불행히도 가치관의 단절로 현대한국화의 사조 형성이 연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때문에 본고에서 감히 제안하고자 하는 사실은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와 더불어서 조선시대 어진 및 초상화는 문인화가 모방적이고 소재의 환상적인 것을 지향했던 것과는 달리 소재의 원리를 주관적인 이데아나 형식원리에 두지않고 현실자체에 보다 깊은 통찰을 꾀하였고 대상의 본질을 관념으로 구성하지 않고 역사적 제약밑에서 사실을 묘사했다고 했던 점에서다. 한국화의 고전적인 사실주의란 차원에서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리라 본다. 따라서 여기서 묘사된 디테일의 정밀한 묘사와 再現 그리고 그에 맞는 필법의 구사는 앞으로 한국화의 사조형성에도 지대한 바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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