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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줄풍류 形成에 관한 硏究

Title
가야금 줄풍류 形成에 관한 硏究
Other Titles
The Musical Study of the Pungryu for the Gayageum
Authors
류지연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음악학부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거문고 중심의 세악 편성으로 연주하는 줄풍류 음악이 형성된 것은 조선 후기로 여겨진다. 조선 후기 향리의 선비들과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중인계층이 새로운 음악수용층이 되면서 음악문화에 변화를 가져온다. 조선 후기는 또한 중인계층의 가객과 풍류객에 의해 줄풍류 음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영산회상>은 18세기 전반에 현행의 <중령산>이 만들어지고, 18세기에는 현행과 같은 줄풍류 음악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18세기에 줄풍류 음악을 발전시킨 것은 실제 음악을 담당하던 풍류객이었을 것이다. 줄풍류 음악문화를 형성한 풍류객은 거문고를 연주하던 선비뿐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음악가집단을 포괄한다. 줄풍류 음악을 수록한 고악보가 대부분 거문고 악보이고, 거문고가 음악의 주된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줄풍류에 대한 연구는 거문고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줄풍류 음악인 <영산회상>으로부터 여러 악곡이 파생되는 적층적 형성과정에는 전문 음악가집단이 훨씬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줄풍류 음악의 형성과정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고악보가 남아 있고, 명인들에 의해 다양한 줄풍류가 만들어지는 가야금이 오히려 연구대상으로 타당할 것이다. 본고의 연구목적은 가야금 음악을 통해 줄풍류 음악의 형성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고악보에 수록된 가야금 줄풍류와 산조 명인에 의해 만들어진 개인 줄풍류, 그리고 현재 연행되는 경제와 각종 향제 줄풍류를 총망라하여 줄풍류 음악의 형성과정을 밝히는 것이다. 가야금 줄풍류가 수록된 가장 오래된 고악보는 19세기 초엽에 편찬된 것으로 여겨지는 『동대 가야금보』인데, 이 시기에 <영산회상>과 <잔도드리>가 정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양청도드리>와 <글기도드리>는 거문고의 경우에는 19세기에 만들어졌지만 가야금의 경우는 20세기에 들어서 악보에 수록된다. <계면가락도드리>는 거문고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엽에 형성된 것이다. 개인 줄풍류와 향제 줄풍류에서 연주하는 <굿거리>는 『방산한씨금보』에 수록된 것으로 미루어 20세기 초엽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야금 구음법은 초기에는 거문고 구음을 그대로 차용하였다. 가야금 구음법이 악기의 특성을 감안하여 독자적인 구음법으로 발전한 것은 19세기 무렵이다. 『동대 가야금보』에서는 12줄에 각각의 구음을 부여하여 가야금 구음법이 확립되고, 이런 구음법은 이후의 고악보에는 거의 그대로 이어진다. 정악가야금으로 연주하는 『국악원』과 『구례』의 경우에도 이런 전통적인 구음법이 이어지는 것이다. 향제 줄풍류는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고악보의 구음법과는 다르게 변화한다. 가야금 줄풍류의 선율을 통시적·공시적으로 비교분석하면 현행 줄풍류의 형성과정을 알 수 있다. 이를 단순화시키면 『동대 가야금보』와 『동대율보』는『김죽파』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는 『군산』『경주』와도 같은 계통의 음악이다. 『우의산수』와 『아악부가야금보』는 『국악원』으로 이어지고, 이는 『성금련』『대전』『내포』와 같은 계통의 음악이다. 『금은금보』는 『김윤덕』과 호남의『정읍』『이리』『구례』와 같은 계통의 음악이다. 『방산한씨금보』는『우의산수』와 더불어 『국악원』『성금연』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심상건』의 잔가락이 『국악원』과 유사한 것을 통해 『심상건』도 『국악원』의 형성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 『강태홍』은 여느 악곡과는 달리 ‘지’음을 無가 아닌 南으로 내는 것이 독특하다.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대부분의 줄풍류는 산조와 줄풍류의 조현법이 다른데 비하여 『강태홍』은 조현법이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야금 줄풍류의 형성과정은 단순화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줄풍류를 형성한 가야금 연주자들은 전통적인 선율을 받아들이면서도 각자의 창의적 음악성을 발휘하여 각각의 고유한 음악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마치 스승의 산조를 배우지만 원숙한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산조를 만들어가는 음악전통과 같은 것이다.;Pungryu, the classical ensemble music of the literati, was developed in the 18th century. At the time, a new musical culture was cultivated by the literati and the middle class who amassed wealth due to the economical growth. The new patron of music adopted a court repertoire, Yeongsan hoesang, and created a new music performed by the geomun-go (6-stringed zither), gayageum (12-stringed zither), piri (double-reed bamboo oboe), daegeum (large transverse bamboo flute), haegeum (2-stringed fiddle), and janggo (hourglass-shaped drum). This new music is named pungryu, meaning "wind flowing," or jul ("string") pungryu because the main melody is performed by the string instruments. The repertories of the pungryu include Yongsan hoesang, Cheonnyeon manse, and Dodeuri. Since most of old musical notations are made for the geomun-go, the historical study of pungryu has been focused on the geomun-go music. However, there are some musical notations and old recordings made for the gayageum. In this thesis, I will investigate the pungryu for the gayageum through old notations, recordings, and those transmitted today. According to the 19th-century notations, the gayageum pungryu was established at that time. It means that the nine pieces of Yeongsan hoesang is presented in the 19th-century notations. Cheonnyeon manse for the gayageum was included in the early 20th-century notations. Gutgeori, which is performed in local versions, appears in the early 20th-century. Most of old notations for the gayageum are mnemonic notations. At first, the mnemonic system for the gayageum was borrowed from that for the geomun-go. The gayageum mnemonic system was developed in the 19th century. The system was transmitted to the Seoul style pungryu which is performed by the classical gayageum. The local style pungryu developed another system to suit for the use of the folk gayageum. Through the historical investigation of the pungryu for the gayageum, we can understand the lineage of the music. It can be simplified as bellow; Old Notations Seoul style Individual style Local style Dongguk U ── → Kim Juk-pa Gunsan, Gyeongju Ui geumbo ── → NCKTPA Seong Geum-yeon Daejeon, Naepo Aakbo Bangsan -------↗ geumbo Sim Sang-geon ↗ Geumeu Geumbo ─ → Kim Yun-deok Jeongeup, Iri, Gurye The gayageum pungryu transmitted in local areas are much similar to the gemun-go pungryu that the Seoul style. It means that the Seoul style developed its own music because it has been transmitted by professional musicians. The local style mainly transmitted by amateur followed the geomun-go music. However, it is not easy to simplify the transmission of the pungryu as shown above. Some master musicians developed their own style as they did in the making of sanjo music. It is the Korean way of music-making to develop their own music based on the music they had learned from their tea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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