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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레제의 후기회화에 나타난 민중관

Title
페르낭 레제의 후기회화에 나타난 민중관
Other Titles
Fernand Le´ger's views on the people depicted in his late painting : Focuses on the 'Work','Leisure' and 'Circus' series
Authors
오영은
Issue Date
1996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Keywords
레제후기회화민중관노동여가서커스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1881-1955)의 후기회화에 나타난 그의 민중관에 관한 연구이다. 레제는 기계와 산업생산물 같은 현대문명을 작품화하고 모더니즘의 발전에 기여한 화가인 동시에 작품을 통해 민중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한 화가였다. 레제는 1차대전에 참전해 민중으로 구성된 공병군단에 복무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였으며, 그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30년대 이후의 사회, 정치적 활동을 통해 더욱 의식화된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가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민중이 현 사회의 불평등에서 해방되기를 진정으로 원했기 때문이었으며, 민중이 등장하는 후기회화는 이러한 그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레제는 쿠르베, 도미에, 콜비츠, 그로츠 등의 화가들처럼 민중의 편에 서서 현 사회가 변혁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사회적 의식을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레제는 민중을 고통받는 피지배 계급이 아니라 역사 발전의 주체 세력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타 화가들과 구별된다. 민중을 향한 레제의 애정은 정치적 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려는 것 외에도 그들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레제는 민중이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 힘썼다. 그는 글을 통해 잘못된 미술 교육의 개혁을 촉구하기도 하고, 야간에 미술관을 개방하여 민중에게 미술을 접할 기회를 부여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현대미술과 민중 계급이 분리되어 있는 상황을 해결해보고자 했다. 민중에게 미술 감상의 기회를 널리 제공하고자하는 레제의 이러한 노력은 또한 소유의 대상이 되는 이젤회화가 아닌 공공적 특성을 지니는 벽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레제는 자신의 후기회화에서 민중의 모습을 주된 소재로 다룸으로써 그들에 대한 애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명하였으며, 관람자로서의 민중이 자신의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박하고 단순한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레제가 민중의 모습을 통해 보다 구체화된 사회적 주제를 다루게 된데에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의 논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작품속에서 공산당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전하지는 않았으며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주장하는 19세기의 자연주의로 복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제는 계속해서 조형적 대비를 강조하고 자율적인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현대회화에서 성취된 조형요소의 자율성과 내용 전달이 용이한 구상적 이미지를 적절하게 결합시켰다. 후기회화 중 '노동', '여가', '서커스' 연작에는 민중을 향한 레제의 애정과 그들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레제는 '건축 공사장 인부들' 연작에서 비례에 맞지 않게 투박하게 그려진 인부들의 손을 통해 많은 노동을 하는 그들의 현실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그러한 현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들의 노동이 문명을 창조한다는 것에 존경을 표하기 위한 것었다. 레제가 민중의 노동을 찬미한 이유는 그것이 그들 자신이 해방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토대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자를 무표정한 얼굴과 정태적인 자세로 그림으로써 그들의 모습에 고대 조각과 같은 영원성과 위엄을 부여하였다. 이같은 전형화된 얼굴과 정태적인 자세는 퓨리즘과의 관련이 두드러졌던 1920년대의 인물화에서부터 사용되어왔으나, 그 목적은 화면에 정적인 질서를 가져오기 위한 것에서 민중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변화되었다. '건축 공사장 인부들' 연작을 비롯한 레제의 많은 작품들에서는 인물이 정태적 자세로 그려짐으로써 화면에 정적인 질서가 부여되었지만, 이와 달리 다이빙하는 사람들을 그린 연작에서는 인물들이 하나의 형태로 통합되거나 색이 형태로부터 분리됨으로써 회화평면에 역동적인 움직임이 생긴다. 레제는 구성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에 의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민중의 집단적인 힘을 암시하고자 한 것이다. 민중의 여가를 다룬 작품들 중 자전거타는 사람들과 소풍의 장면을 그린 작품들에서는 화면 구성과 균일한 인물 이미지에 의해 레제가 최상의 사회단계로 생각한 공산주의 사회가 제시되었다. 즉 레제는 인물 각각의 형태에 동등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일직선으로 배치함으로써 더 이상 피지배 계급이 아니라 완전한 평등이 실현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민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커스' 연작은 사회 혁명을 향한 민중 공동의 요구, 더 나아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그들의 집단적인 힘을 보여준다. 레제가 서커스에 의해 전민중이 주체가 되는 혁명을 암시할 수 있었던 것은 서커스를 비롯한 민중의 축제에서 그들이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 즉 혁명을 추구하는 민중의 공동체적 요구는 서커스 행렬을 그린 작품에서처럼 민중 전체가 참여하는 축제라는 주제적 측면에서도 암시되었고, 서커스 공연장을 그린 작품들에서처럼 원과 원심적인 움직임으로 표현된 상징적인 조형성에 의해서도 나타났다. 레제의 후기회화는 분명한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조형성의 실험에 치중했던 그의 일반적인 초기 작품들과 구별된다. 즉 레제는 후기회화를 통해 민중의 공동체 의식과 집단적인 힘에 의해 현실이 변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인 관점과 적극적인 애정을 피력한 것이다.;This is a study of Fernand Le´ger's views on the people that is expressed throughout his late paintings. Le´ger's was an artist who not on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modernism by creating works of modem civilization such as machine and industrial product, but also an artist who expressed deep affection for the people through his work. Le´ger's first became aware of the people while serving with them in the engineer corps during the World War I. His interest toward the people progressed into a more conscious and concrete form through the social and political activities in the 1930s. He joined the communist party in the hopes that the people woud be set free from their current social status of inequality, and this is well reflected in his late paintings. Le´ger expressed his social consciousness of wanting the reality to be reformed very specifically in his painting as did Courbet, Daumier, Kollwitz, and Grosz. However Le´ger stands different from other painters in that he viewed the people as the driving force in the making of history rather than as the suffering governed class. Endearment toward the people was revealed through the political activities in which he tried to reform the society and through his efforts to provide the conditions for the people to experience or enjoy art. Le´ger worked on many lectures geared towards educating them to better understand and appreciate modem art. Through his writings, he urged the reform of the art education, and demanded that the museums stay open during the evening hours to increase the chances of the people seeing art, therefore lessening the gap between modem art and people. Le´ger continuous efforts were shown through producing murals that possess public characteristics instead of easel paintings which are subject to private purchase. Le´ger adopted people as the main motif expressing love for them in his late paintings. He adopted simple and naive image that people as viewers can easily understood at a glance. Dispute with the socialist realism played a crucial role in treating social subjects through peolple's figure, but Le´ger neither delivered the communist political ideology, nor returned to the 19th century naturalism that socialist realism insisted on. Rather he aimed for autonomous color and contrast effect and completely combined autonomy of plastic elements in modem art and figurative image which is easily conveyed. Among his late works, he showed love and optimistic vision toward people in the 'Work', 'Leisure', and 'Circus' series. He expressed the realities of their lives doing many work through ill-proportioned and roughly painted worker's hand in his 'The Construction workers'. This was not to criticize their current status, but to show a respect to the fact that their labor that is the foundation in creating the new society in which they will be set free. He described workers as a expressless face and static posture, making their figure possess the eternity and dignity like that of ancient sculptures. A typical figure and static posture related to purism was used since his paintings of 1920's, but the purpose changed from establishing peaceful order in the picture to expressing respect to the people. In many of Le´ger's works such as 'The Construction workers' series, figure are in static posture therefore giving the picture a sense of order, however in 'The Divers' series, the figures unified into a single form or the color is seperated from form, giving the picture dynamic movement. With this Le´ger wanted to suggest the people's collective power that he believed can reform the society. Among Le´ger's works regarding the people's leisure, 'The Cyclists' and 'The Picnic' series offer communist society that Le´ger considered the highest level of society, with consistant figure image. He intended to give each form of figure an equal importance, and by lining them up in a straight line, attempted to show the people no longer the governed class but a member of a completely equal community The 'Circus' series show the people's demand toward social revolution. He was able to do this because in carnivals such as circus, he found that the people pursued communal values. Their common pursuit of the revolution suggested in choosing the subject of carnival, as well as in the symbolic form of circle and circular movement. Late paintings of Le´ger, with the definite subject, is clearly different from his early works attaching weight to experimenting formative value. By presenting the possibility that reality can be reformed through the communal pursuit and collective power of the people in his late paintings, Le´ger stated his optimistic views and enthusiastic affection for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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