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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末鮮初 地藏菩薩像 硏究

Title
麗末鮮初 地藏菩薩像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the Bodhisattva Ksitigarbha Sculptures of the Late Goryo and Early Joseon Dynasty
Authors
남궁사라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지장보살은 석가입멸 후 56억 7천년 만 뒤 미륵보살이 출세하기까지의 무불시대인 오탁악세에 출현하여 말법시대까지 석가로부터 일체 중생의 구제를 의뢰 받은 보살이다. 특히, 지장보살은 육도의 그 어떤 곳에라도 몸을 바꾸어 나타나 모든 중생을 구원할 때까지는 절대로 성불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서원을 세운 때문인지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보살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지장보살은 크게 인기를 끌었으며 지장신앙은 우리나라 사회에 매우 중요한 신앙형태를 구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겨진 지장보살상 가운데에서 당대 조각을 대표할 만한 대형작품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는 고려불화에서 지장보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과 매우 대조된다. 그러나 고려시대 지장신앙의 유포현황을 통해 본다면 사찰 안에 안치하기 위한 지장보살상이 상당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4세기 이후에는 정토신앙과 관련하여 지장보살이 아미타여래의 우협시로 등장하여 기복적인 성격을 띠며 새롭게 유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조선시대까지 계승된다.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현존하는 지장보살상은 약 30여점에 달하고 있다. 이들 상은 그 자세와 결합방식에 따라 크게 독존형의 중, 대형상과 소형상, 그리고 삼존구성의 소형 불상들로 나눌 수 있다. 경전에 의거한 지장보살의 형상은 성문의 비구형에 오른손에는 석장을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의궤를 벗어나 지장보살상이 다양한 도상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석장을 생략한 채 보주만 들고 있거나 보주대신 법륜을 들고 나타나는 등 매우 다양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중국 및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지장보살상이 두건을 쓰고 나타나는데 이는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어 우리나라 지장보살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르는 시기는 우리나라 불교사에 있어 지장신앙이 가장 중요한 신앙중의 하나로 자리 잡는 때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지장보살상 중 고려말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은 단 한 점 뿐이다. 물론 석불상의 지장보살상이 몇 구 남아있기는 하나 이들 상은 모두 조각기법이 떨어질 뿐 아니라 훼손이 몹시 심하여 세부적인 양식고찰은 어려운 실정이다. 비록 고려시대 작품으로 남아있는 상이 단 한 점이나 이를 통하여 전반적인 고려후기 지장보살상의 조성현황을 추정해 볼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상이 가지고 있는 양식적인 특징은 그대로 조선초까지 계승되어 고려말, 조선초의 지장보살상의 양식고찰에도 큰 도움을 준다. 특히 현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지장보살상은 조선초기 작품인데 이것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선행한 고려말의 지장보살상의 양식고찰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고려말, 조선초의 지장보살상의 양식을 비교해보면 조선초기에는 고려후기의 전통적인 양식을 계승한 바탕 위에 새롭게 받아들인 양식들을 조화시켜 나름의 지장보살상을 완성시켰음을 알 수 있다.;This thesis is a study of the Bodhisattva Kstigarbha sculptures of the late Goryo and early Joseon Dynasty. The Bodhisattva Ksitigarbha is the one who assigned by Buddha to act as on His behalf, in order to save the sentient beings during the period of No Buddha on Earth, until the Bodhisattva Maitreya appears on the Earth over a few billion years later. He made a vow not to become a Buddha if the hell is not yet empty. For this reason, the Bodhisattva Ksitigarbha became one of the most popular Bodhisattva of Korea after his introduction in Three Kingdoms Period. The Bodhisattva Ksitigarbha also established a significant religious configuration along with his popularity. Nevertheless, the rarity of extant works associating the Buddhist sculpture of the divinity still remains questionable. It opposes to the Buddhist painting of the Bodhisattva Ksitigarbha occupies a great portion in Goryo Buddhist paintings. However, it is presumed that many Bodhisattva Ksitigarbha sculptures were created, enshrining in temples. Especially in 14th century, the Bodhisattva Ksitigarbha attained more popularity by joining with the Amitabha’s Pure Land sect which succeeds to Joseon Dynasty. From late Goryo to early Joseon Dynasty, the remaining numbers of the Bodhisattva Ksitigarbha’s sculptural images are about 30 pieces, which can be classified into two groups according to their combining forms; the large and small images of the single form or the small images appears as the flanking bodhisattva of the Amitabha’s. According to the Sutra of the divinity, he should appear in the form of a priest with shaven head, carrying a khakkhara (Priest’s Staff) on one hand, holding a cintamani (Precious Pearl) on the other hand. However, the sculptural images of Korea’s Bodhisattva Ksitigarbha show various iconographic changes. For instance, instead of a cintamani, the Bodhisattva Ksitigarbha sometimes holds a dharma-cakra (Wheel of Law) and a khakkhara is often omitted. Such features are only visible in Korea. Also, the iconography of the hooded Ksitigarbha becomes the most distinctive feature of the Korea’s Bodhisattva Ksitigarbha’s images. Such depiction only discovered in Central Asia and Korea which suggests the relationship between two areas. The late Goryo and eary Joseon Dynasty is the important period of time concerning the Bodhisattva Ksitigarbha since by no means in that period; the divinity began to take an insignificant posi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religion. But, only one sculptural image of the Bodhisattva Ksitigarbha is to be found from the late Goryo Dynasty. Of course, there are few remaining works to be found in stone forms. But those stone images are not only showing awful sculptural techniques, but also all severely destroyed; therefore, impossible to examine the details. Despite the rarity of authentic Bodhisattva Ksitigarbha’s sculptural images from the late Goryo Dynasty, general manufacturing condition of the Bodhisattva Ksitigarbha from Goryo Dynasty can be understandable through this one fine craftsmanship. Moreover, such style continues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Great majority of the remaining sculptural images of the Bodhisattva Ksitigarbha are mostly from the Joseon Dynasty. To understand these works, it is essential to study its preceding style. By comparing two styles, styles from early Joseon Dynasty completed itself over by combining the traditional styles from Goryo Dynasty with newly accepted styles from China is recogniz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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