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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明治]시대 석판화 연구

Title
메이지[明治]시대 석판화 연구
Other Titles
明治時代の石版画研究
Authors
김지원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전통적으로 목판화에 뿌리를 두었던 일본의 시각 이미지는 메이지 시대의 근대개혁이 추진됨으로써 동판과 석판으로 계승되었다. 동판이 양화의 효과적 재현을 위해 발명되고 연구되었다면, 석판은 복제의 기능을 가진 보다 진보적인 인쇄기술로서 근대 시각이미지의 보편화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물과 기름의 원리를 이용한 석판은 이전의 목판, 동판과는 다르게 복제가 가능한 매체로서, 대량생산체제의 일차원적인 매체가 되었다. 동일한 이미지를 대량으로 생산해 낸다고 하는 것은 특수한 일부의 소유물이 불특정 다수의 소유물로 전환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사회가 수많은 광고매체와 인터넷 등에 노출되어 전국적으로 같은 사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과 같이, 근대기 석판은 대량생산을 통해 대중과 사회 간의 소통을 자유롭게 하여 전국적으로 사회의 보편사상을 일반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까지 '석판'이라고 하면 판화의 한 종류로서 그 기법적인 측면만이 우선시 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 마저도 판화의 역사가 그다지 길게 뿌리 내리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석판'이라고 하는 외국으로부터 전승된 미술기법은 그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했으며, 과거 인쇄기술의 하나로서 접근, 연구하려했던 시도는 진전된 연구가 따르지 않아 한계에 그쳤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판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성과가 지속되어 온 까닭에 석판인쇄기술에 대한 1차 연구 및 사료들이 확보, 보존되어 왔으며, 이를 토대로 진전된 연구를 시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필자는 근대일본 석판기술의 초기 발달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석판이 갖는 시대적 매체로서의 의의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석판은 국가의 신제도 개편에 따라 도입되었는데, 실용인쇄를 위해 국가 인쇄 기관인 대장성 인쇄국에 근무 했던 마쓰다 록산[松田緑山]과 우메무라 스이잔[梅村翠山]에 의해 그 발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마쓰다 록산은 자체적인 연구를 통해 양화의 복제를 성취하였으며, 우메무라 스이잔은 우표와 지폐 등 보다 실용적인 석판인쇄에 초점을 두었다. 석판인쇄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도입되고, 연구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양화와 실용인쇄의 확산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경향으로 발전되었다. 전자는 미술의 근대화에 공헌하였으며, 후자는 사회적 제반변화와 더불어 발생한 다채로운 공공 인쇄물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석판은 기본적으로 이미지의 '복제성'과 대량생산에 따른 '공공성'을 내재한 매체였기 때문에 점차 위의 두 흐름은 혼재되어 상업적 인쇄물로서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근대라는 사회에서 대중들의 의식성장과 소비증가가 그 생산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석판의 특징을 크게 '복제성'과 '공공성'으로 보고, 전자는 명화의 재현에, 후자는 공공인쇄물의 생산과 유통에 주안점을 두어 근대사회와 대중문화의 성장과정 속에서 전개된 석판의 의의를 다루고자 했다. 석판은 '근대'라는 시대적 변혁기에서 태동한 근대적 산물일 뿐 아니라 그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대중, 사회 간의 소통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미술이미지와 상업 인쇄물의 보편화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지면위의 새로운 경험들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도시화와 상업적 규모의 확대, 대중문화의 발달 등 근대 산업사회로의 변화와 동반되어 나타난 것으로 철저히 시대성을 전제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석판은 다른 여느 매체의 연구와는 달리 '근대'라는 시대적 이해의 맥락 속에서 연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미술기법이나 인쇄 기술적 측면보다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석판의 존재를 표면화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석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비쥬얼 아트의 측면에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특히 미술적 공백이 큰 우리개화기 미술의 이해에도 중요한 실마리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석판의 연구는 근대 미술과 사회발달의 측면에서 근세와 근대, 현대에 이르는 그 과도기적 단계성을 밝히는 데 유용한 자료로서 활용될 것임을 확신한다.;In development of the modern reformation during the Meiji period, Japanese visual images that were traditionally based upon woodcut printings were later produced in copperplate printings and on to lithographs. It could be said that the copperplate printings were invented and developed to effectively represent the western paintings. On contrary, lithographs, which is an advanced printing technique using the principle of water and oil, were the reproductions of the modern visual images to a one-dimensional medium. To replicate images means to converse one’s special possession into an anonymous one. Thus, lithographs during the modern period brought an era of open communication between the mass and the society through manufacture, bringing modernism close to the general public. Moreover, it had generalized artistic imageries and had commercialized printings-resulting a social spread of new experiment on paper. This change was based upon a reflection of an era in the modernized industrial society of urbanization, increase in commercialization, in development of the mass media, and so on. Hence, the study of lithograph is to understand the period of modernization, as a meaningful part in the historical context. The earlier Japanese lithographs were used as a mean of an artistic expression through mass printing of the western art work. Toward the later period, it served more clear purpose in mass replication, in collusion with commercial art. Compared to the European lithograph, which of its artistic purpose was more focused on the practical usage of printing, such as printing musical scores and documents, the Japanese lithograph illustrated its characteristics of ‘replication’ and ‘mass’, and constantly showing its integrated development. Thus, looking into the two distinctive functions of lithograph ‘replication’ and ‘mass’ is a meaningful study to take in hand. Especially due to the fact that all lithograph printings contain both features of replication and mass, and that one cannot be separated from another. However, both of the two functions had their own distinctive affect to the modernization. The former traditionally replicated the western paintings in contribution to impeccably illustrate the western images. Latter, was used as means of the Nation’s cultural policy to promote rapid modernization. Compared with the European lithograph, which was developed due to the competitiveness of lithography techniques that was passed onto artists, the development of Japanese lithograph was thoroughly led by the government, in a way to overcome the sense of the western inferiority that the Japanese have had for a long time. This writing holds its meaning in analyzing lithograph, which has been formally studied as just one of the many genres in art, as a social media and in representation of forming the modernization in Japan. Lithograph contributed in the modernization period through spreading many concepts in artistic and social areas, and also making a ground work for the cultural development of the mass. In reference to Walter Benjamin, "…for the first time in world history, mechanical reproduction emancipates the work of art from its parasitical dependence on ritual. To an ever greater degree the work of art reproduced becomes the work of art designed for reproducibility." the modernization of lithograph is the main idea that is conveyed in this writing. Lithograph, as a media which reflected modernism, is meaningful itself but also holds its value in relation to the visual culture, mass, social, and understanding the one dimensional art work of modern Japan Meiji period.;木版画に根を置いた日本の視覚イメージは明治時代の近代改革により、銅版と石版に発展された。銅版は洋画の持つ効果的な再現のため発明し、研究されたとしたら、石版は複製の機能があるより進歩的な印刷技術として、近代視覚イメージの普遍化過程に決定的な役割を行った。明治期の石版は大量生産を通じて大衆と社会の間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自由にし、全国的に近代の普遍思想を一般化させたと言える。 明治石版は前半期には洋画家の作品を石版画化させる芸術的な行為として、そして公共のための刷り物として活用され、後半期になると商業美術として大量生産される傾向が強まった。ヨーロッパの石版が実用性を基に芸術の領域で活用された反面、日本はその「複製」、「公共」の機能をより具体化させ、集約的な発展を見せている点が特徴である。 つまり、筆者は石版の刷り物を「複製性」と「公共性」の機能で分けて分析した。石版印刷は基本的に複製性と公共性を一緒に内在し、独立的に分けられないが、二つの機能が各々、時代の近代化転換に寄与したと判断されるからである。前者は伝統的に洋画を完璧に再現しようとした西洋的のイメージ化の発現し、後者は急進的な近代化のため国家が行った最善の教化政策の手段になった。ヨーロッパの石版が一種の印刷技術として競争的に発展され、画家から受け入れられたことに対し、日本は徹底的に国家主導で施行され、西欧に対する劣等意識の克服という意味から活性化された側面がある。 本論文は石版が今まで美術ジャンルとして研究された観点から脱し、「近代」のメディアとして分析した点から意義を持つ。石版は美術的、社会的に多様な概念を派生して時代的の変化に乗じ、一方では大衆の文化形成に大きく貢献したと判断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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