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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景文王의 정국운영과 그 성격

Title
新羅 景文王의 정국운영과 그 성격
Other Titles
The King Gyeongmun(景文王)‘s management of the political situation and historical character in the late period Shilla
Authors
최미정
Issue Date
2006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영미
Abstract
이 글은 경문왕대 정국운영 추이와 그 특징을 통해서 신라하대에서 경문왕의 정치가 가지는 위상을 조명해보고자 하였다. 신라하대 경문왕대는 혜공왕 이후 일어난 왕위쟁탈전이 외형적, 내면적인 면에서 종식되는 시기였다. 이후 경문왕가로 36년간의 왕위를 이어나가게 된 것은 경문왕이 안정되게 정국운영을 펼친 것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문왕대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신라하대의 사회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경문왕대 정국운영을 해 나가는 과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먼저 범원성왕계의 표방과 唐으로의 책봉을 통한 정통성을 확립해가는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아보았다. 원성왕계를 통합하기 위한 추숭작업을 펼치는 상황을 금석문 등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범원성왕계 지향을 넘어서서 무열계 및 진골세력의 통합까지 도모하고자 하는 경문왕대 노력을 살펴보았다. 감은사, 황룡사 등에 대한 경문왕의 관심에서 이를 추론하였다. 여기서는 황룡사9층목탑 중수와 같은 국가사업에 진골세력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는지 덧붙였다. 정국을 운영해나가는 과정에서 반란세력을 어떻게 진압하고, 전염병·자연재해 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 또한 살펴보았다. 경문왕대는 이와같은 정책과 정국의 추이와 함께 唐에서 돌아온 새로운 지식인을 받아들여 권력기반을 확대해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는 도당지식인의 역할에 주목했다. 경문왕은 唐에서 돌아온 유학적 지식인을 위해서 관직을 새로이 두면서 그들의 전문적 지식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또한 入唐 선사들을 통해서는 당시 중국의 사정을 전해 들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경문왕의 세력기반의 확대는 정국을 원활하게 운영하여 나타난 결과인 동시에 이후 경문왕계가 신라왕실을 이어가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경문왕대의 정국운영 과정은 신라하대에서 특징적인 성격으로 자리매김한다. 그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그 첫 번째가 경문왕대는 신라 대통합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범원성왕계 표방을 통한 가계내 통합을 넘어서 이전 왕실의 진골세력까지 통합하려는 의도를 이 시기 보인다. 이러한 의지를 바탕으로 이 시기에 신라하대에서 보기드문 태자세습을 단행하여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 있다. 경문왕이 정국운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태자를 두고 있다는 점은 侍讀과 같은 새로운 직책을 두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둘째 경문왕대 정치가 갖는 특징은 신라하대 왕들과는 다른 관리 운용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즉 상대등과 시중에 친족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정국운영 구상에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셋째는 唐과의 관계에서도 독자적이고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인다. 안정된 왕권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시기 견당사 파견기사는 적게 나타난다. 이는 당시 渡唐知識人으로부터 唐의 혼란상을 전해들은 경문왕이 이를 정보로 활용하여 더욱 국내 정치에 매진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넷째, 경문왕의 정국운영이 하대 다른 시기와 다른 특징은 많은 축조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범원성왕계에 대한 추숭사업은 물론, 왕실과 관련된 토목공사를 자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고 통합을 지향할 만큼의 힘을 당시 경문왕이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문왕의 정국운영의 특징은 새로운 문한기구가 부상하거나,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시독이라는 중궁의 관직이 새롭게 보이고 있고, 瑞書院이라는 관청이 한림대의 후신이 아니라, 한림과 동등하게 틀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문왕 시기에 瑞書院은 등장하여 헌강왕대 이후로 기록이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문왕대 翰林臺와 瑞書院은 唐의 內外制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말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경문왕의 정국운영과 그 정치적 특징을 이 논문에서 연구하였다. 경문왕은 즉위 때부터 안정된 기반으로 왕위에 올라 세력 간 통합을 이루면서 하대 왕실에서 보기 드문 태자책봉을 통해 왕실의 권위도 세웠다. 그리고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는 唐과의 교류를 통한 지식인들의 양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정국운영을 펼쳐나갔다. 불교, 유교적인 측면 모두를 자신의 정국운영 방법으로 삼은 경문왕은 하대왕실에서 보기 드문 정국안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경문왕을 이해하는 것은 신라하대를 바라보는데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This thesis tries to examine the phase of the King Gyeongmun in the late period Shilla from his ability to manage the political situation. The King Gyeongmun's Period was ceased the a scramble of the throne of the late period of Shlla. After the King Gyeongmun, the throne was succeeded his son and daughter during 36 years. This is why the King Gyeongmun managed political situation amicably. Therefore it is important to grasp the King Gyeongmun 's historical character, because it is the important base to understand social situation of the late period of Shilla. This study spreads the following sequences. First, the King Gyeongmun's background of accession to the throne focusing his family line is pregented. Second, the character of the course of managing the political situation is divided several occasions. First of all, this study is showing the situation to profess Pan-the King Wonseong lineage(汎元聖王系) and establish legitimacy by recognizing by T'ang(唐). It is establishment of legitimacy in external and internal respects. Also, the King Gyeongmun's trying to unify of Muyeol family line as well as Pan-the King Wonsung lineage is considered a important character in this period. It can be inferred through efficiently controling the Jingol powers(眞骨勢力). This thesis tries to show the King Gyeongmun expanded influences by accepting the new intelligenzia to study away from the Dang Empire. The new intellectuals studied the Confucian ideas and Buddism. The King Gyeongmun's the Crown Prince, the King Heongang's period was succeeded his father's policies. This is evidence that the King Gyeongmun's policies were good and efficient in the late period of Shilla. The King Gyeongmun acceded to the throne under the stable foundation and unified the Jingol powers. Also he set up authority of the Royal house hold by making his first son the Crown Prince. And he managed the political situation training the new intellectuals through interchange between Shilla and T'ang (唐). He set up ways of managing the political situation with both the Confucian ideas and Buddhism. As mentioned above he achieved the unprecedented stable political situation in the late period of Shilla. Therefore, to understand the King Gyeongmun's period is considered important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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