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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古代燕文化硏究

Title
中國古代燕文化硏究
Authors
배진영
Issue Date
2001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bstract
本硏究的目的是爲了理解起源于新石器時期的中國各地文化對從秦漢帝國的統合機制始發的 華夏文明有何形成, 檢討從西周時期到春秋戰國時期形成的中國各地域土着文化與中原文化之間的拮抗關係. 如此過程是以西周時期在各地(域)施行的諸侯分封制度所造成的結果. 本篇論文是以燕國爲其硏究對象, 考察西周的大分封國燕, 在燕山地區具有悠久文化傳統與 政體 保持的土着文化(土着勢力)之中, 如何長期存續的這一問題, 幷且通過這種過程, 要設定中原文化與地域土着文化之間的關係, 但爲了揭示燕國具體像, 主要考察各個時期以燕國與周邊勢力之間的關係上看出來的燕國像爲中心各時期上規定, 要設定每個時期燕文化之特徵. 如此同時, 通過考察燕國與各個土着勢力的關係從各勢力範圍以及文化上的分布範圍, 要論證相互間的拮抗關係. 第1章, 考察了西周時期燕國的立國與燕文化. 西周初期燕國立國時導入的文化是中原的周族文化, 此乃姬姓燕國主體勢力之文化, 卽可以規定爲姬燕文化. 姬燕文化是燕國的主體勢力―姬燕支配層的文化, 幷是接受商遺民文化的統治階級的文化.  同時與此地域土着的張家園上層文化是異質的文化. 姬燕文化以琉璃河遺址爲中心, 房山區一帶, 拒馬河, 浹水一帶, 易縣一帶 等 在大體從保定以北到永定河以南中, 初期與張家園上層文化竝存, 逐漸擴大了勢力範圍, 事實上其勢力範圍是相當有限的, 所以不能越過永定河一帶, 幷在其以北, 張家園上層文化勢力仍然持續存在. 這意味着以姬燕文化爲主體勢力的燕國勢力與繼承把夏家店下層文化繼承的張家園上層文化勢力在永定河南北上互相對峙的可能性. 第2章, 追究了春秋時期燕國之具體像. 周初在燕山地區立國的姬燕文化之主體勢力與張家園上層文化勢力互相竝立的永定河南北一帶, 到了西周中期以後, 就看不見燕國事蹟了. 到了公(紀)元前664年, 燕國由于山戎的侵入爲契機, 再次登上了中原歷史的舞台上. 西周中晩期以後, 燕國由于西周王室支援的斷絶及圍繞燕國的北方諸戎狄勢力, 燕國與中原的關係大槪斷絶了. 從燕與山戎的關係中出現的 越 與 伐 關係, 讓我們可以推定燕國與以山戎爲代表的北方勢力之間已經有某種關係之形成. 山戎侵入以後, 燕國得到齊國的幇助而可以存立, 以後經過召公之法的收復, 再編入中原. 圍繞燕國的玉皇廟文化, 白狄文化, 夏家店上層文化之主體勢力可能分布于永定河以北. 我們可以推定春秋時期, 燕國勢力範圍沒有越過永定河一帶, 都城也在容城一帶. 春秋時期, 在燕國文化姬燕文化的性格不太明顯, 而新文化性格的燕式 以及大口釜(紅陶釜)出現. 第3章, 從對戰國時期的燕國與燕文化的探討, 理解了以下內容. 到了戰國時期, 燕國與中原之間的交流比較活躍. 由于燕王 禪讓的事件, 爲了 報齊 燕昭王施行變法, 做反間工作, 結果燕國與中原各國展開了更加活躍的交流, 同時, 燕國也接受了中原之各種體制與文化. 燕下都是當時燕國文化的代表遺址,  包括以燕式 與大口釜(紅陶釜)爲代表的土着文化的因要, 以動物紋樣與動物形裝飾爲代表的北方文化因素以及以中原各種禮器爲代表的中原文化的因素(性格). 第4章, 破齊成功以後敢行的五郡設置, 建立了巨燕, 而且以燕下都文化爲主逐漸擴張的燕文化, 形成了巨燕文化, 這是在接受中原郡縣體制以後, 在燕山一帶適用的. 燕國雖然築造長城, 設置郡, 而派遣官吏統治各地, 但是在燕文化的擴張上難免有所一定限界, 因此城外文化與城內文化之間有明確的差別, 幷城外靑銅短劍與石棺墓之廣泛留存說明在巨燕文化裏燕文化與異質文化是同時存在的. 上面的分析過程中, 得出了以下幾個結論. 第一, 燕文化經過了幾次變化過程. 西周時期姬燕文化與春秋戰國時期形成的燕文化有明確的差別. 姬燕文化以中原周文化爲主體, 不能保持此地區傳統的土着勢力文化. 與此相反, 春秋戰國時期的燕文化, 是由傳統文化因素, 北方文化因素, 中原文化因素的結合而形成的.  (燕文化)與燕山各地區土着勢力的文化相融合, 幷接受燕山地區文化, 在這一點上與姬燕文化有 明確的差別. 巨燕文化就是(意味)春秋戰國時期保持燕山地區文化傳統的燕文化, 在燕國的勢力的擴張過程中所形成的.  (巨燕文化)是所謂巨燕·全燕之成立後形成的, 因此, 其成立時期, 可以推測爲五郡設置後的戰國中晩期. 第二, 燕國形成巨燕, 全燕的時期不是西周時期, 而是進行五郡的設置和到永定河以北 城遷都的戰國中晩期以後. 就是說, 商末周初開始在燕山地區陸續出現的商周靑銅器, 不是意味着燕國把其地區作爲勢力範圍. 在燕山地區 早就有與中原文化異質的北方諸戎狄文化, 每個文化中所出現的靑銅禮器說明他們與中原文化有交流幷接受過中原式禮制, 而不是意味着 們是燕國的屬方國. 從中可知, 燕國是西周時期以來一直在永定河以南一帶存續的, 而到永定河以北全面擴大時期是中晩期以後. 第三, 燕文化的變化過程上可以推定燕國在異質文化圈中能 長期存續之原因在于 自己的變化. 雖然 燕國開始在異質的文化裏, 其勢力也不强固, 但 能 保持墓葬與葬俗等, 後而我們可以認定 的繼承性. 可以說, 燕文化之變化過程是一個集團在與地區文化同化或融合的過程中所發生的變化現象. 燕國以中原大分封國立國, 而在燕山地區强大的土着勢力與文化中, 能 存立的方法就是燕國自己的變化. 此乃用武力排除地區土着勢力(張家園上層文化)而形成的姬燕文化, 擺脫其文化的屬性, 幷自己體現燕山地區文化而能 形成新文化的原因. 以上, 通過考察各個時期燕國之對外關係與勢力範圍上所出現的變化以及蓋時期燕文化之面貌, 探討燕國的具體像. 向來許多硏究者認爲, 琉璃河遺址之發現與燕山一帶靑銅器的陸續出現, 就說明燕國從周初開始已經成立了巨燕幷享受了北伯的地位, 領導了地區文化. 但這種觀點忽視了燕國的變化以及從而帶來的燕文化的變化, 所以再不能得到支持了. 本硏究主要考察燕國的勢力範圍與燕文化的分布範圍, 試圖了燕國史的全面體系化. 到現在, 對燕國政治·經濟·軍事·社會·文化方面的硏究, 不能把握其具體像. 希望將來對燕國陶文的分析等綜合性硏究方面有也所成就. 本硏究在探討燕國具體像的前提之下, 通過燕文化的分析, 試圖在各時期不同的燕國像中, 發現一個共同的連結點. 希望本論文對以中原文化代表的華夏文明, 在秦漢帝國統合之前, 如何傳播到各地, 與各地域文化發生何等關係等問題能 提供端緖. ; 本 硏究는 新石器時期로부터 起源을 두었던 中國 各 地域의 文化는 각각 어떠한 과정을 통해 秦漢帝國의 統合機制로부터 始發된 華夏文明 의 形成에 役割을 하였는가에 대한 理解를 돕기 위해 西周時期로부터 春秋戰國時期에 형성된 각 지역의 土着文化와 中原文化와의 拮抗關係를 검토코자 하였다. 이러한 過程은 西周時期 각 地域에 행해진 諸侯 分封을 계기로 형성될 수 있었던 바, 燕國을 分析 對象으로 삼았다. 본 연구는 中原文化와 體制를 保持한 西周의 大分封國 연국이 燕山地域의 오랜 문화적 전통과 政體 를 이룰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保持한 土着文化(土着勢力) 속에서 어떻게 오랜기간 존속할 수 있었는가에 주목하여 中原문화와 地域 土着文化와의 관계를 설정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료 부족으로 燕國의 구체상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燕國과 주변세력과의 관계를 설정하여 燕國의 像을 각 시기별로 규정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각 시기별로 나타나는 燕文化의 특징과 성격을 부각시켜보고자 하였다. 또한 燕國과 土着勢力과의 관계는 燕山지역내의 각 세력의 역학관계를 고찰하여 대체적인 세력범위를 설정하고 동시에 각 세력집단의 문화의 분포범위를 검증하여 燕山지역에서의 이들간의 拮抗關係를 논하고자 하였다. Ⅰ장에서는 西周時期 燕國의 立國과 그로 인해 형성된 燕文化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에 따르면 西周 초기 燕國의 문화는 중원의 周族의 姬姓 燕國 主體勢力의 문화라는 점에서 姬燕文化 로 규정할 수 있었다. 姬燕文化 란 무장력을 앞세워 立國한 姬姓 지배층의 문화로 이 지역 토착세력인 場家園上層文化는 그 범위안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으로 볼 때 이 지역문화와는 이질적인 문화라고 볼 수 있었다. 姬燕文化의 분포범위는 琉璃河遺址를 중심으로 保定∼永定河 이남지역안에서 張家園上層文化와 공존하다가 점차 그 세력범위를 확대시켜나가지만 그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永定河 일대를 넘지 못하였고 永定河 이북에서는 張家園上層文化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존재하였다. 이는 姬燕文化를 주체로 하는 燕國 세력과 燕山지역의 토착세력인 張家園上層文化세력은 永定河 남북에서 대치학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Ⅱ장에서는 燕國史에 있어 거의 공백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春秋시기 燕國의 구체상을 대외관계의 변화를 통해 추적하고자 하였다. 燕國 대외관계의 변화는 기원전 664년에 山戎의 침입을 계기로 알 수 있었던 바, 周初 大分封國 燕國은 西周 중만기 이후 中原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越 과 伐 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山戎 제세력과 燕과의 관계는 모종의 친연관계를 형성하였음을 알려주었다. 단 山戎 침입을 계기로 召公之法을 修復 하게 된 燕國은 中原으로 재편입하기에 이른다. 한편 燕國을 둘러싼 玉皇廟文化, 白狄文化, 夏家店上層文化는 그 세력집단이 이미 永定河 이북까지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春秋時期 燕國은 容城 일대로 천도하였다는 점과 주변 제융적 세력의 강성은 燕國의 세력범위를 여전히 永定河 일대를 넘지 못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春秋時期 燕國의 문화는 구체적 실상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姬燕文化에서 보여준 속성은 상당부분 사라진 반면 새로운 문화 면모가 태동하여 燕式 , 大口釜(紅陶釜)와 같은 새로운 기물이 출현하였다. 戰國시기 燕國과 燕文化를 검토한 Ⅲ장에서는 이 시기 연국은 燕王 의 禪讓事件을 계기로 報齊 를 위한 燕昭王의 反間작업과 變法의 시행은 중원 각국과의 대외 관계를 더욱 활발하게 전개시켰으며 이를 통하여 中原의 각종 체제와 문화를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燕下都는 당시 燕國文化의 가장 대표적 유지로 그 문화적 속성은 燕式 와, 紅陶釜로 나타나는 토착문화적 속성과 動物紋樣과 動物形裝飾으로 나타나는 북방문화 요소 및 중원의 각종 禮器로 나타나는 中原문화적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Ⅳ장에서는 破齊 의 성공 이후 감행된 5郡 설치는 巨燕을 성립시켰고 燕下都文化를 주축으로 하는 燕文化의 확산은 巨燕文化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중원의 郡縣체제를 수용하여 이를 燕山 일대에 적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燕國이 演算 남북 일대를 세력범위로 삼은 시기는 실제적으로 전국 중만기 이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演算 남북 일대가 長城의 축조, 郡의 설치를 통해 燕國의 세력범위가 되었을지라도 5郡 설치지역에 나타나는 燕文化의 확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던 바, 域外문화와 域內문화는 분명 차별적이었으며 域外의 靑銅短劍과 石棺墓의 광범한 존재로 볼 때 巨燕文化에는 전형적인 燕文化와 동시에 이질문화가 포함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의 분석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燕國의 역사에는 몇가지 변화상이 발견된다는 점이었다. 燕國은 分封 초기부터 北伯의 위상을 갖고 燕山 남북 일대를 진무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적어도 전국시기 이전까지는 永定河 이북으로 진출하지 못하였다. 燕國이 비록 강력한 무장력을 앞세워 北京 일대에 大分封되었을지라도 西周왕실의 지원이 단절되고, 토착세력의 강력한 저항이 지속되었을 때는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 구조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강력한 토착세력이 존재하였던 이질문화권인 燕山지역내에서 燕國이 오랜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燕國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山戎, 東胡, 朝鮮 등 燕國 북방에 거주한 북방 제세력과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등 모종의 관계를 맺고 활발한 교류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국이 중원의 禮制에 편입되어 있고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을지라도 燕國文化에 북방문화의 요소가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국의 변화상은 문화면에서도 나타난다. 즉 燕文化에는 몇가지 변화과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姬燕文化와 春秋戰國時期 형성된 燕文化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姬燕文化는 燕國 주체 세력이 가져온 中原 周文化를 주체로 하며 이 지역 전통의 토착세력문화를 담보하지 못한 반면, 春秋戰國時期를 거쳐 형성된 燕文化는 燕山地域文化를 체현하였다는 점이 姬燕文化와의 분명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巨燕文化는 演算지역문화의 전통을 일정하게 담보해낸 燕文化가 燕國 세력의 확산과정에서 지역적으로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알 수 있었던 것은 燕國이 巨燕, 全燕을 형성한 시기는 西周시기부터가 아니라 5郡 설치와 永定河 이북의 계城 천도를 단행한 全局 중만기 이후가 된다는 점이었다. 이상과 같은 연국의 스스로의 변화 과정 및 그에 따른 燕文化의 추이와 연국 세력범위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질 문화권속에서 장기간 연국이 존속하기 위해 토착세력 및 그 문화와의 투쟁, 접촉, 변화, 융합, 공존을 거쳤던 변화의 과정이자 지역토착세력과 문화와의 拮抗關係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이상 각 시기별 燕國의 대외관계와 세력범위의 변화 및 그에 따라 시기별로 나타나는 燕文化의 변화과정에 주목하여 이들간의 관계를 통하여 연국의 전체상을 체계화 시켜보고자 시도하였으며 아울러 이를 통하여 中原文化와 각 지역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비록 燕國의 각 방면에 대한 其體像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燕國의 전체상은 모호하지만 이는 연국의 陶文 등의 분석을 통해서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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