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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기생 복식에 관한 연구

Title
근대 기생 복식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Dress of Gisaeng during the early twenty century
Authors
공승연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관기제도가 폐지되고 기생조합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1908년경부터 기생제도가 사라지는 1945년까지의 근대 기생의 복식문화에 대해 살펴보고 그 변화 요인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1900년경부터 우리나라는 개항과 함께 서양문화가 유입되어 전통복식과 서양복식이 혼용된 반양복이나 양장을 착용했다. 근대 기생의 복식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당시 기생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여성복식의 서구화 과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근대 기생 복식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근대 대부분의 기생들은 쪽찐머리를 하였고 그 형태는 당시 서구화된 일본의 머리 모양에 영항을 받아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마를 하거나 웨이브를 넣었다. 일부 단발을 한 기생들은 서구 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자로 여겨져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권번의 금지로 인해 요릿집에 나갈 때는 다리(月子)를 사용하여 쪽찐머리를 해야만 했다. 머리 장식은 비녀나 뒤꽂이 외에도 새로운 머리 모양을 위해 핀(pin)을 사용했다. 근대 기생의 저고리는 일반 여성들의 것보다 소매가 더 넓었고 진동은 예전처럼 작아서 겨드랑이가 조여지는 형태였다. 당시 서울에는 평양 출신의 기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을 받은 일반 여성들은 서북지방의 저고리 형태인, 소매에 혼술을 둔 저고리를 착용하기도 했다. 기생은 일반 여성보다 긴 치마를 입었고, 치마 여밈은 일반 여성과 반대로 했다. 또한 기생은 치마를 몸에 휘감아 허리띠를 둘러 맨 형태인 주릿대치마를 착용했다. 기생은 양장보다 치마ㆍ저고리에 서구적인 머리모양이나 부속품을 혼용한 반양복 차림을 즐겨했다. 일패(一牌)기생은 반양복이 허락된데 반해 삼패(三牌)는 금지되었고, 점차 여학생 복장이 반양복화 되자 기생의 반양복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근대 기생사진 중에는 반양복 차림의 기생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러한 규칙은 잘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됐다. 기생의 고름 장식핀은 일반 여성에게는 관찰되지 않았고, 고름 장식핀을 착용한 열 한명의 기생 중 소속이 같은 기생 다섯 명이 동일한 형태의 고름 장식핀을 착용했다. 그 결과 근대 기생의 고름 장식핀은 기생의 소속을 알리는 상징물일 것으로 추측됐다. 근대 기생은 허리를 강조한 서양의 여성복과 일본 예기들이 기모노를 입고 오비를 두르는 것에 영향을 받아 치마 위에 허리띠를 즐겨 착용했으며 이는 일반 여성들에게도 유행되었다. 기생들과 일반 여성들은 방한용이나 장식용으로 한복이나 양장을 입고 숄(shawl)을 둘렀다. 신여성과 여학생들은 손목시계나 반지 등의 금(金)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고 기생들 역시 금 장신구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부(富)를 과시했다. 근대 여성들은 외출이 잦아지면서 거추장스러운 장옷 대신 양산으로 얼굴을 가렸다. 근대 초기에는 계층에 따라 양산의 색이 구별되어 일반 여성들은 검은색, 일패는 붉은색, 이패는 분홍색, 삼패는 그 이외의 색상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점차 사라졌고 여성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양산 색상을 선택했다. 기생들은 주로 값비싼 수입 화장품을 사용했는데 당시 가장 비싼 것은 청에서 들어오는 양분(洋粉)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일본에서 들어온 왜분(倭粉), 국산인 연분(鉛粉) 순이었기 때문에 기생의 계급을 구별하는 말로 양분기생, 왜분기생, 연분기생이라는 말이 사용됐다. 반면 근대 기생들은 저렴하고 실용적인 흰 고무신을 즐겨 신었다. 다음으로 근대 기생 복식의 변화 요인을 기생 생활과 관련지어 살펴본 결과 제도적 요인ㆍ문화적 요인ㆍ경제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었다. 제도적 요인으로는 기생에 대한 복장 규정이 있다. 근대 사회는 기생 복식을 규정함으로써 복식을 통해 기생의 직업과 지위를 표시하게 했다. 기생은 일반 여성보다 긴 치마를 입었고 치마 여밈은 일반 여성과 반대로 여몄으며 일반 여성이 검정 양산을 사용하는데 반해 기생들은 붉은 양산을 사용했다. 한때는 빗치개 모양의 머리 장식으로 기생임을 표시하여 일반 여성들과 구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녀 복장에 대한 규정은 기생들이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기 꺼려했기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았고 오래 유지되지도 않았다. 근대에는 기생을 일패(一牌)ㆍ이패(二牌)ㆍ삼패(三牌)로 구별하여 복식에 차등을 두었다. 일패기생에게는 반양복 차림이 허용됐지만 삼패에게는 금지되었고 일패는 붉은색 양산, 이패는 분홍색 양산, 삼패는 그 이외의 색상을 선택하여 사용했다. 문화적 요인으로는 첫째, 문화적 접변으로 인한 기생 복식의 변화이다. 근대 기생들은 일본 손님이나 일본 예기들과의 잦은 접촉으로 일본 복식의 착장법과 비슷한 형태를 보였다. 일본 예기들이 기모노에 널따란 오비를 두른 것처럼 기생들은 긴 치마를 몸에 휘감은 후 허리띠를 둘렀으며 당시 일본의 유행을 쫒아 쪽찐머리에 웨이브를 넣거나 가르마 위치에 변화를 주었다. 또한 서양인의 손님과의 잦은 접촉으로 인해 서양의 노래와 춤을 공연하면서 서양식 공연복을 입거나 그들의 복식문화를 빠르게 수용해 반양복 차림을 즐겨했다. 둘째, 근대 기생의 역할 확대는 기생 복식에 대한 영향력을 변화시켰다. 조선시대 기생들은 왕이나 양반들의 연희에 치중한 반면 근대 기생들은 자신들의 기예를 상업화하여 다양한 공연문화를 통해 대중예인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 결과 기생들은 유행리더가 되었고 특히나 기생 복식은 주로 일반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되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여전히 기생 복식을 비난하고 배척하였다. 경제적 요인으로는 근대 기생의 경제력에 따른 복식 변화이다. 권번에 소속된 일부 기생들은 사회적 신분에 비해 높은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도 같은 고급 원단으로 옷을 지어 입었고 금(金) 장신구나 외제 화장품을 사용하며 자신의 부(富)를 과시했다. 반면 관기제도의 폐지로 인해 더 이상의 관록(官祿)이 지급되지 않아 기생들의 경제적 상황은 전반적으로 예전만큼 풍요롭지 못했기 때문에 저렴한 물건을 선호하기는 경향도 있어 값비싼 당혜나 갖신 대신 질기고 값싼 흰 고무신을 신었다. 이상으로 근대 기생 복식과 그 변화 요인을 살펴본 결과 기생의 복식은 자신의 직업과 지위를 상징하는 역할이 컸으며, 근대화라는 사회변화와 함께 서양 복식의 영향을 받아 치마ㆍ저고리에 당시 서양에서 유행하던 머리 모양이나 부속품에 영향을 많이 받아 반양복 즐겨 했다. 또한 근대 기생들은 일본인 손님이나 일본 예기들과의 문화접변으로 인해 일본의 전통복식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하에 있었지만 일반 여성의 복식이 일본 전통복식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본 논문에서는 근대 기생복식을 살펴보고, 그 변화 요인에만 집중하였기 때문에 기생 복식의 변화 과정까지는 살펴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현존하는 근대의 기생 사진이나 엽서의 연도를 밝히는 연구와 함께 근대 기생 복식이 어떠한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dress and its ornament of modern Gisaeng and the changing factors from 1900, when the official Gisaeng system was abolished and a union of Gisaeng was formed, to 1945, when the union stopped to exist. Starting in 1900 when the opening of port to foreign trade and Western culture was introduced, Korean people began to wear semi-Western dresses, which were a mixture of traditional Korean clothes and Western clothes, or Western ones. By looking into the dress and its ornament of modern Gisaeng, you can get a picture of the lifestyles of Gisaeng in those days, as well as understand the westernization process of modern women's fashion in Korea from more diverse perspectives. Gisaengs enternain customer with a song and dance. The characteristics of the dress and its ornament of modern Gisaeng were as follows; they mostly had a chignon for their hairdo. The parts in their hair were moved in locations or their hair became wavy under the influence of westernized hairdos of Japanese women. People criticized those Gisaeng in a small number who had bobbed hair for recklessly following the Western culture. For hair ornaments, they used pins to fix new hairdos in addition to Binyeo(hairpins) and Duikkoji(ornamental hairpins). Their Jeogori(jacket for women) grew longer in the 1910s with the sleeves wider than those of common women and the armholes smaller enough to be tight around the shoulders. There were a lot of Gisaeng from Pyeong-Yang(平壤) in Seoul those days, and they had impacts on the dresses of common women; common women wore the Jeogori with the crosses on both sides in the sleeves being influenced by the unique Jeogori of Northwestern area of Korea. Gisaenges wore skirts longer than common women and adjusted the skirts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m. Especially their Juritdae skirts(tight-wrapped skirts around the body) were unique having a belt tied around the waist. They usually preferred the semi-Western fashion, which consisted of the traditional Hanbok and Western hairdos and accessories, to Western dresses. Modern Gisaeng wore a pin on fastening ribbon for use in ornamental and symbolic purposes. The pin was not observed with common women's fashion. Five of ten Gisaenges that belonged to the same institution had the same string ornaments, which suggests that string ornaments must have been a symbol of a Gisaeng's institution. Being affected by the Western women's dress putting an emphasis on the waist and by the Japanese geisha' wrapping obi around their kimono, Gisaeng tied a belt around the skirt and wore scarves for the purpose of keeping the cold away or adorning themselves. At the same time they boasted their wealth by wearing gold accessories such as wrist watches and rings and putting on expensive imported cosmetics, while they enjoyed cheap and practical white rubber shoes. Modern women went out often and used an parasol instead of Jang-ot(長衣, cloak-shaped veil) to conceal their faces. In the early days colors of parasol were strictly appointed for each class of women; common women would carry a black parasol, a first-grade Gisaeng a red one, a second-grade Gisaeng a pink one, and a third-grade Gisaeng one of the remaining colors. As time went by, however, the distinction grew fader and women chose colors for their parasols according to their tastes. The factors of changes to the dress and its ornament of modern Gisaeng were examined in relation to their lifestyles. There turned out to be three factors, which were institutional, cultural, and economic ones. As for the institutional factors, there were dress codes for Gisaenges. In the modern society of those days, they set up prescriptions for their dress and its ornament to find out their vocation and status. Gisaenges distinguished themselves from common women by wearing longer skirts than them, adjusting their skirts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m, and choosing red colors for their parasols and hair ornaments. Even among them there were differences according to their grades; those Gisaenges of first-grade were allowed to wear in a semi-Western fashion while those of third-grade weren't; and those of first-grade and second-grade carried a red and pink parasol respectively, those of third-grade got to choose one among the remaining colors. There were a couple of cultural factors; first, acculturation led to the changes to the dress and its ornament of Gisaeng. In the modern days, they had many contacts with Japanese clients and Japanese geisha and thus their dress gradually resembled that of the Japanese counterparts. Just like Japanese geisha wrapped wide obi around their kimonos, they tied a belt around their long skirts. Following the vogue in Japan, they also loved a wavy hairdo or changed the part in their hair. Second, their role expansion resulted in the changes to their dress and its ornament. Unlike the Gisaenges in Chosun Dynasty that performed at a royal or noble feast most of the time, the Gisaenges in the modern times commercialized their artistic performance and became public entertainers by putting on diverse performances. In particular, their dress and its ornament were popular among common women, but that's doesn't mean they were free from social judgments and criticism. As for the economic factors, their economic power brought about changes, too. In the modern days the Gisaenges earned much compared to their social status and showed off their wealth by using high-class materials such as veludo(羽緞, velvet) for their clothes and wearing gold accessories and imported make-up. On the other hand, they were given wages from the government no longer as the official Gisaeng system was rescinded and thus wore cheap and practical white rubber shoes. In short, according to the investigation results of the dress and its ornament of modern Gisaeng and the changing factors, their dress and its ornament played a big role in representing their vocation and status. Under the influences of social changes accompanying by westernization and Western fashion, they loved to dress up in a semi-Western fashion comprised of traditional Hanbok and Western hairdo and accessories. The acculturation with the Japanese clients and Japanese geisha made their dress look similar to the traditional Japanese dress, which was contrary to common women in those days under Japanese rule whose dress was hardly affected by the traditional Japanese dress. Since the study focused on the dress and its ornament of modern Gisaeng and the changing factors, it's limited in that it failed to examine the changing process. In future they should do research on the exact dates of the Gisaeng pictures remaining and the changing process of their dress and its orn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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