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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聖賢圖 硏究

Title
朝鮮時代 聖賢圖 硏究
Authors
강시정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is thesis discusses production and circulation of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聖賢圖) of the Joseon Dynasty and how the themes were visually formed based on its uses.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is a confucian figure painting lied at the root of an idea being called Worships for Sages and Worthies(崇賢思想). It had been constantly pictured in China as a main theme of the didactic portrait which is an origin of the ancient portrait after the pre-Han times. It found its way into Korea from China along with an introduction of confucian cult through the times of the Silla and Goryeo Dynasty and was expanding in a variety of forms in the Joseon Dynasty. We can classify making patterns of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of Joseon Dynasty into two ways referred to literatures such as a true record of Joseon Dynasty and anthologies. One is the publication of country level which is based on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from China and the other is the production of personal level. In the royal houses and national organization the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functioned as an edifying visual aids and also as an assignment for testing the royal painters. A literary man in Joseon Dynasty wanted to get the wills of sages by copying with intend to self-discipline. And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also functioned as a kind of teaching materials for imparting achievements and lessons of the sages to children who got into confucianism.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of Joseon Dynasty was producted and functioned in a variety of forms by its uses and for that reason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of Joseon Dynasty is classified into three ways for the purpose of ritual, education and personal worship. Portraits of Confucius(孔子像) and Daeseongjisungmunsunwangjeonjwado(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 are for ritual like Seokjeon(釋奠) and they were used for memorial services of Confucius. In the aspect of icon, there are two Portraits of Confucius in existence. One is Portrait of Master Kong, Traveling and teaching(孔子行敎像) which is traditionally attributed to Wu Daozi (ca.689-after755) and the other is a work showing iconic tradition of the late Joseon Dynasty which has no authority of its icon. We can assume the age of the picture by a way of stroke of the brush. Daeseongjisungmunsunwangjeonjwado focused on recording in preference to painting and reflected style of the Song period of China. it affected style of documentary pictures of the royal event in the Joseon Dynasty. Album of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聖賢圖像帖) and Illustrations of the life of confucius(孔子聖蹟圖) were used as a medium that teaches Confucius and cultivate morality of Confucius. Album of Sages and Worthies could be classified by two versions, woodblock-printed book and transcription book. Woodblock-printed Album of Sages and Worthies was manufactured maintaining extremely traditional way in both aspects of icon and style, still it shows interesting patterns of expression in character's face because of specificity in manufacturing, woodcutting. They believe that those patterns affects manufacturing of common portraits. Transcription book in comparison with woodblock-printed book shows a variation in each book especially in books manufactured by clan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variation is shown as breakdown of traditional forms of expression like including not only Chinese sages but also Korean confucianist such as Song Shihyol(宋時烈, 1607-1689). Illustrations of the life of confucius followed Chinese version in each scenes which is used for training the Prince Royal, popularization of confucianism and also as a pictorial of literary painters. The works of Yoon Dooseo(尹斗緖, 1668-1715) are the only existed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which are producted by literary man of the Joseon Dynasty for the reason of private worship of sages. Yoon Dooseo reconstructed the composition of characters and the space in his work according to his own way without following common fashion like type-followed manufacturing. Those works show a phase of changing and dissolving in the field of product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by the literary painters of the late Joseon Dynasty.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is the subject of painting applied to a wide variety of functions and uses while it kept the conservative tradition in icon and style. Through this study Portraits of Sages and Worthies is cleary marked off as one unique pictorial genre from another general portraits through new documentary records and works.;본 논문은 聖賢圖의 연원과 화제의 성립과정 및 조선시대 성현도의 제작, 유통 상황과 ‘용도’에 따른 그 재현양상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聖賢圖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崇賢思想을 바탕으로 제작된 유교 인물 초상화로 중국에서는 고대 인물화의 기원을 이루는 鑑戒的 인물화의 주요 주제로서 前漢시대 이래로 꾸준히 제작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고려시대를 통해 유교 의례의 전래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성현도가 유교의 부흥을 꾀했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 확산되었다. 왕실기록 및 문집과 같은 문헌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성현도의 제작 양상을 살펴 보면 조선시대 성현도의 제작은 크게 중국에서 유입된 성현도를 범본으로 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성현도 간행사업과 유학자들이나 문인들의 숭모와 교화를 위한 사적인 차원에서의 성현도 제작으로 나눌 수 있다. 왕실과 국가기관에서 성현도는 올바른 군주와 신하의 전범을 제공하는 교훈적 시각물로 기능하였으며, 왕실 화원들의 기량을 평가하기 위한 과제로서 활용되기도 하였다. 한편 조선시대 문인들은 修己를 목적으로 성현도를 직접 모사하는 행위를 통해 성인들의 뜻을 얻고자 하였으며, 또한 성현도는 유학에 입문하는 아이들이 성인의 사적과 교훈을 익히기 위한 일종의 교재로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성현도의 계통분류에서는 성현도가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되고 기능했음에 주목하여 祭禮用, 敎化用, 崇慕用으로 분류하였다. 釋奠과 같은 공자 성현의 제례에 사용되었던 그림인 제례용 성현도는 孔子像과 <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가 있다. 도상적 측면에서 현존하는 공자상은 당대 오도자 전칭의 공자 行敎像을 그대로 모사한 작품과 중국에서는 그 도상적 전거를 찾을 수 없는 조선말기 초상화의 도상적 전통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 등이 있다. 양식적 측면에서는 그 필묵법이 모두 조선 말기적 특징이 드러나 그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는 회화성 보다는 기록성이 강한 유학적 典籍으로 송대 의궤도 양식을 반영하면서 이후 조선시대 궁중행사의 기록화 형식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작품이다. 유학의 교훈과 윤리를 전파하고 유교적 도덕성 함양을 위한 매체로 기능했던 교화용 성현도로는 聖賢圖像帖類와 孔子聖蹟圖가 있다. 성현도상첩은 그간 미술사 연구에 활용되지 못하였던 자료들로 크게 목판본과 필사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목판본 성현도상첩은 도상적, 양식적 측면에서 모두 극도의 보수적 전통을 고수하며 제작되었으나, 판각이라는 제작의 특수성으로 인해 인물의 안면표현 방법에서 유형적 패턴이 보여 흥미롭다. 이러한 패턴은 일반초상화의 제작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필사본의 경우는 목판본에 비해 각 본마다 변화를 보이는데 특히 조선 후기 문중에서 제작된 본 중에는 중국의 성현 뿐 만 아니라 宋時烈(1607-1689)과 같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포함되는 등 수록인물의 전통적 체제와 표현 양식이 파괴되기도 한다. 공자성적도는 왕세자의 교육과 유교의 대중화를 위한 용도로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인화가들에 의해 화보로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각 장면의 구성은 중국본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성현에 대한 개인적인 숭모와 흠모의 정을 갖고 제작했던 숭모용 성현도로는 윤두서의 작품만이 현존한다. 윤두서는 <十二聖賢畵像帖>, <五聖圖>, <蘇東坡像>를 그렸는데 <十二聖賢畵像帖>에서는 특히 성현도의 일반적 제작방식인 유형적 답습의 제작과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에 따라 인물과 공간을 재구성하고 있다. 윤두서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에 의한 성현도 제작의 변화와 해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성현도는 도상과 양식상의 보수적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조선시대를 통해 다양한 기능과 용도로 활용되었던 화제이다. 새로운 문헌자료와 작품들을 통해, 중세적 감상물 위주의 회화사 연구에서는 그 연구가 이루어 지지 않아 死藏되어 흔히 초상화로 통칭되어 오던 성현도라는 화제를 일반 초상화와는 구분되는 회화장르로서 자리매김 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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