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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馬樓吳簡 倉庫의 運營과 그 性格

Title
走馬樓吳簡 倉庫의 運營과 그 性格
Authors
전효빈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Degree
Master
Abstract
本文章是注目在長沙發掘的走馬樓吳簡裏的倉庫掌握在一個區域內存在多個倉庫時候的經營方式和其性格。走馬樓吳簡反映納稅到倉庫的具體狀況,更具體地掌握從前含糊不淸楚的倉庫經營方式的機會而具有意義。但是,這些尤其,因爲把倉庫作爲據點可掌握物資的輸送狀況,所以相關物理資源的控制權與國家權力具有密切關係上更重要。因此,這些並不限定于倉庫問題,而是與經營資源的國家權力的關係之中要解釋。 在走馬樓吳簡可確認具體的倉庫名稱,尤其主要出現向長沙臨湘所在的可推測爲倉庫的郡倉, 州中倉, 三州倉的納稅。臨湘作爲長沙的首縣郡治所時,郡倉的存在很自然,但是郡倉以外的州中倉和三州倉的存在是在一個區域設置的多個倉庫與즘麽經營相關其關係很注目。走馬樓吳簡的三州倉和州中倉是推測爲縣級管轄機構的倉庫,考慮當時臨湘爲諸侯國時可推測爲縣級侯국的倉庫。但是,考慮當時荊州的聲望時,應相當保留對長沙的首縣臨湘物資的侯국具有的獨創性。因此,預想物資送出到外部時可推測爲轉運倉。但是,在走馬樓吳簡無法確認超出郡縣單位的物資送出。從漢代的物資統制變化角度看這些時可自然理解,所以在這些過程的連續綫上應說明。 對倉庫的物資統制在以災害對策執行的開倉行爲中可具體掌握其權限的所在和執行。官的倉庫物資是以稅金組成在理念上屬於國家的物資,開倉並放出倉庫物資的行爲是具有節的使者也問矯制罪程度不能容忍。因此,這些開倉行爲原則上歸屬於皇帝在中央統制,這些原則在後漢也基本上持續過。但是,在前漢允許中央派遣的特使或者皇帝特別任命的人開倉時,前漢末以後,尤其在後漢代容忍郡長吏的開倉行爲,甚至容忍縣長吏的開倉。這是說明在地方擁有的倉庫物資統制比中央統制更自由,反映這些統制變化爲地方單位的狀況。 像這樣在一個區域的物資統制也超出了中央統制,郡國之間的物資供應時這些狀況更深刻。受災區域廣泛受害程度深刻時以該區域內的開倉不能解決,因此需要郡國之間的物資流通。但是,前後漢郡國之間的物資流通與發生災害和對這些的國家對策比較時只佔相當低的比率。根據皇帝詔書指示郡國之間的物資供應,可確認受國家中央的統制。但是,實質的物資流通實例很少可確認被中央政府受指示也倉庫物資的輸送實際很難執行。 這些通過地方擁有的中央直屬倉庫和對其物資的政府意見以及其執行結果也可確認。當考慮每洛陽的敖倉是把關東物資統屬于中央管轄物資時候的重要轉運倉時,要注目對中央直屬倉庫的設置和經營國家的關心和執行結果。對此的國家意志是通過對常平倉設置的意見,施工羊腸倉等在前後漢都共同地出現過。在前漢末如此的國家意志實際執行了,但是進入後漢代雖然國家中央意志依然存在也實際沒有執行。尤其,中央管轄的典型物資對鹽鐵的統制逐漸從中央轉移到地方也是如上所述說明漢代倉庫和物資的統制從中央統制脫離的狀況。從這些觀點可解釋在走馬樓吳簡的倉庫並不是轉運倉無法確認郡外送出的原因。 在走馬樓吳簡確認的州中倉和三州倉爲縣級侯國倉的事實更明確了。以納稅單位出現的丘被分割,各個丘民向特定的倉吏和庫吏納稅,以三州倉和州中倉分離納稅,可確認各個倉庫是管轄範圍被區分負責在其範圍來的納稅。但是,具有三州倉物資的一部分重新輸送到州中倉的事例,因此兩個倉庫的物資並沒有獨立的關係。雖然分擔納稅領域,但是一部分納稅領域在重復,由此可推測統屬關係。即,倉吏數和納入件數, 擔當丘數多的州中倉比三州倉位于上面的倉庫在統屬三州倉。分離設置類似的倉庫時可預想兩者之間的領域衝突的時候,這些倉庫的統屬關係對有效率地徵收稅金並管理做出了貢獻。在走馬樓吳簡確認的如此的倉庫經營方式也許在一個區域設置多個倉庫的漢代也按類似的方式經營。 另一方面,在走馬樓吳簡根據丘徵收稅金,與從前的徵收稅金單位鄕里區分並存。是爲了確保國家經營的物資基礎的納稅有效率地進行的話,徵收稅金是通過任何方式也必須要確保。因此,依然維持現有的鄕里單位的稅金徵收,對脫離鄕里單位的國民也以另外的丘單位徵收稅金。在丘民當中區分爲男子、大女的倉庫吏們被强迫接受與納稅相關的職役,把如此脫離的國民稅金徵收的責任向里父老以職役强迫一樣向倉庫吏以職役强迫徵收丘民稅金的作用。 如此的吏的位置降低是表示變化的社會現實的一個指標。在尹灣漢簡嚴格限制吏的正式定員又存在很多非正式吏員的前漢末的狀況預告在後漢代加速的吏的位置降低。與通過從前的强制集住的國民統制或徵收稅金比較時,通過丘的徵收稅金只是徵收方式的變化而已,對國民盈餘生産的收取意志依然存在。不是向承擔各種稅的普通小農民添加負擔,而事實上是向屬於下層身빈的集團集中其負擔,這是不符合從前古代國家指向的“均”觀念。但是,這是按照變化的社會結構變形現有的統治方式而出現的現象,走馬樓吳簡很詳細地敍述了在當時變化的社會結構國家權力즘麽同志物資基礎和國民的內容。 關鍵詞: 走馬樓吳簡, 倉庫, 納稅, 物資統制, 倉吏,庫吏, 職;본고는 長沙에서 출토된 走馬樓吳簡에 나타나는 倉庫에 주목하여 한 지역 내의 複數로 존재하는 倉庫의 운영방식과 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走馬樓吳簡은 세금을 倉庫로 납입하는 구체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종래 막연하게 이해된 倉庫의 운영방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倉庫를 거점으로 물자의 輸送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物的 자원의 統制權과 관련하여 國家權力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倉庫의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운영하는 國家權力과의 관계 속에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走馬樓吳簡에서는 구체적인 倉庫의 명칭이 확인되는데, 특히 長沙의 臨湘에 소재하는 倉庫로 파악되는 郡倉, 州中倉, 三州倉으로의 納稅가 주로 나타난다. 臨湘이 長沙의 首縣으로서 郡治所임을 고려하면 郡倉의 존재는 자연스럽겠지만, 郡倉 외의 州中倉과 三州倉의 존재는 한 지역 내에 설치된 複數의 倉庫가 어떻게 운영되었는가와 관련하여 그 관계가 주목된다. 走馬樓吳簡의 三州倉과 州中倉은 縣級 관할기관의 倉庫로 파악되지만, 당시 臨湘이 列侯國이었음을 고려하면 縣級 侯國의 倉庫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荊州가 갖는 위상을 고려하면 長沙의 首縣인 臨湘의 物資에 대한 侯國의 統制權이 갖는 독자성은 상당히 유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로의 物資送出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轉運倉의 가능성이 상정된다. 그러나 走馬樓吳簡에서는 郡縣단위를 벗어난 物資送出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이것은 漢代의 物資統制의 變化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만큼 이러한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倉庫의 物資統制에 대해서는 재해대책으로 행해지는 開倉행위에서 그 권한의 所在와 집행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官의 倉庫物資는 세금으로 거두어져 이념적으로 국가의 물자이기 때문에, 開倉하여 倉庫의 물자를 방출하는 행위는 節을 가진 使者라고 하더라도 矯制의 죄를 청해야 할 만큼 용인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러한 開倉행위는 원칙적으로 황제에게 귀속되어 중앙에서 統制되었으며, 이러한 원칙은 後漢에서도 기본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前漢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特使나 황제에 의해 특별히 임명된 자의 開倉이 허용되었던 것에 비해, 前漢末이후 특히 後漢代에 郡 長吏의 開倉행위가 나타날 뿐 아니라 심지어 縣 長吏에 의한 開倉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용인되었다. 이것은 지방에 보유된 倉庫의 物資統制가 중앙의 統制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진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統制가 지방단위로 변화되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처럼 한 지역 내의 物資統制도 중앙의 統制에서 벗어나는 형태를 보이지만, 郡國間의 물자조달은 이러한 상황이 더욱 심화되었다. 재해지역이 광범위하고 피해가 심각하면 해당지역 내의 開倉으로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郡國間의 물자융통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前後漢의 郡國間 물자융통은 재해발생과 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에 비해 상당히 낮은 비율에 그치고 있다. 황제의 詔書에 의해 郡國間의 물자조달이 지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중앙에 의한 統制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물자융통의 사례가 상당히 적은 것은 중앙정부에 의해 지시되었을지라도 倉庫物資의 수송이 실질적으로 집행되기 어려웠던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방에 보유된 中央直屬의 倉庫와 그 물자에 대한 정부의 논의 및 그 집행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洛陽의 敖倉이 關東의 물자를 中央管轄의 물자로 統屬시키는데 중요한 轉運倉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中央直屬의 倉庫 설치와 운영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집행결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국가의 意志는 常平倉의 설치에 대한 논의, 羊腸倉의 工事 등을 통해 前後漢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前漢末까지도 이러한 國家意志는 실제 집행되고 있지만, 後漢代에 들어서면 국가중앙의 意志가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행되지 못한다. 특히 中央管轄의 대표적 물자인 鹽鐵에 대한 統制가 점차 중앙에서 지방으로 移管되는 것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漢代 倉庫와 그 物資의 統制가 중앙의 統制로부터 이탈되어 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走馬樓吳簡에서의 倉庫가 轉運倉의 성격을 보이지 않고 郡外送出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것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走馬樓吳簡에서 확인되는 州中倉과 三州倉이 縣級의 侯國倉이라는 것은 보다 분명해진다. 納稅의 단위로 나타나는 丘가 분할되어 있으며, 각각의 丘民이 특정한 倉吏와 庫吏에게 納稅함으로써 三州倉과 州中倉으로 분리되어 납입되는 것을 보면, 각각의 倉庫는 관할범위가 구분되어 그 범위 내의 세금납부를 책임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三州倉 물자의 일부는 州中倉으로 다시 운송되는 사례가 확인되기 때문에 두 倉庫의 물자는 독립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納稅의 영역을 분담하고 있지만, 일부 納稅영역이 중복되는 것으로 보아 統屬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倉吏數와 納入件數, 담당하는 丘의 數가 많은 州中倉은 三州倉보다 上位의 倉庫로서 三州倉을 統屬하고 있다. 유사한 倉庫가 分置되었을 때 兩者間의 영역충돌이 예상될 수 있다면, 이러한 倉庫의 統屬관계는 세금이 효율적으로 징수되고 관리되는 데에 기여했을 것이다. 走馬樓吳簡에서 확인되는 이와 같은 倉庫의 運營方式은 한 지역 내에 複數의 倉庫가 설치되었던 漢代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運營되었을 것이다. 한편, 走馬樓吳簡에서는 丘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어 있는데, 종래의 세금징수 단위인 鄕里와 구분되어 竝存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국가운영의 物的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세금납부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라면, 세금부과는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鄕里단위의 세금부과가 여전히 유지되면서도 鄕里단위에서 이탈된 民에 대해서도 丘라는 별도의 단위로 세금이 부과된 것이다. 丘民 중 男子 · 大女와 구분되는 倉庫吏들은 納稅와 관련된 職役이 부과되었는데, 이러한 이탈된 民의 세금을 징수하는 책임이 里父老에게 職役으로서 강제된 것과 같이, 倉庫吏에게 丘民의 세금징수 역할이 職役으로 강제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吏의 位相 格下는 변화된 사회현실을 드러내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尹灣漢簡에서 吏의 정식 정원을 엄격히 제한하면서도 비공식적인 吏員이 다수 존재하는 前漢末의 상황은 後漢代 가속화된 吏의 位相 格下를 예고하며 그 연속선상에서 파악된다. 종래의 强制集住를 통한 民의 統制나 세금부과와 비교해 볼 때, 丘를 통한 세금징수는 단지 징수의 방식이 변화되었을 뿐 民의 잉여생산에 대한 收取意志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종 稅役을 부담해야 하는 일반 小農民에게 추가적으로 役을 부담하는 대신 사실상 下層身分에 속하는 집단에게 그 役을 집중시킨 것은 종래 古代國家가 지향했던 “均”의 관념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변화된 사회구조에 맞게 기존의 통치방식을 변형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며, 走馬樓吳簡은 당시의 변화된 사회구조에서 公權力이 物的 기반과 民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主要語: 走馬樓吳簡, 倉庫, 納稅, 物資統制, 倉吏 庫吏, 職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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