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14 Download: 0

조선시대 침구(寢具)에 관한 연구

Title
조선시대 침구(寢具)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The Study of Beddings in Chosun Dynasty
Authors
박지연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본 연구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침구(寢具)인 이불 · 요 · 베개 · 방석에 대해『발긔』를 중심으로 하여 기타 문헌자료와 유물을 통해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침구는 혼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으며 침구의 사치를 막기 위해 조정에서는 계속적으로 금지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조선시대 전시기를 걸쳐 침구(寢具)의 사치는 계속되었다. 이에 영조28년(1752), 상의원(尙衣院)에서 편찬한 상방정례(尙房定例)를 통해 검약의 모범을 보였다. 하지만 실제 조선말 궁중용 침구를 확인한 결과 화려한 견직물로 만든 많은 수량의 침구가 사용되었다. 침구는 궁중용과 민간용 침구 모두 기본구조나 양식에 큰 차이가 없었으며 궁중용 침구가 민간에서 사용되는 침구에 비해 화려하고 그 숫자가 많을 뿐이었다. 침구에는 이불과 처네, 요와 베개가 포함된다. 이불[衾]은 깃과 동정, 내공, 이불 안쪽에 시치는 홑이불로 구성된다.『발긔』에는'금'이라 표기되었으며, 이불의 종류는 핫이불·겹이불·누비이불·홑이불·처네 등이 있다. 이불에 사용된 직물은 왜주와 삼팔주 등 다양한 견직물이 사용되었다. 또한 출토유물 중 대렴금과 소렴금에 사용된 직물은 문단의 사용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였다. 이불은 녹색계열, 청색계열, 자색계열 등 다양한 색상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불용 직물문양에는 식물문, 자연문, 복합문이 있었고 한가지의 문양을 사용하기 보다는 두 가지 이상의 문양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복합문 형식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처네는 이불[衾]보다 가볍게 제작하여 사용했던 이불의 한 종류이며, 형태는 이불과 크게 다르지 않되 홑이불을 시치지 않고 동정만 달아 사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처네는『발긔』의 기록에'천의'로 표기되었으며, 처네의 종류는 겹처네·핫처네·누비처네가 있다. 처네에 사용된 직물은 왜주와 삼팔주 등 이불과 마찬가지로 견직물을 사용하였다. 처네는 초록색이 가장 많았고, 남색도 많은 양을 차지하였다. 여기에 이불[衾]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분홍·분홍양색·회색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처네는 이불[衾]보다는 다양한 색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처네는 이불과 달리 사용된 직물 중 문양이 있는 직물의 수가 적었다. 본 연구에서 처네에 관해 조사한 결과 궁중에서는 이불로 사용하였고 민간에서는 간편한 덮개, 아기를 업을 때 쓰는 포대기로 이용되었으며, 이것이 하류층에서는 여성이 외출할 때 사용하는 머리쓰개로도 사용되는 등 그 사용 범위가 넓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요는 깃과 동정이 없는 직사각형의 바탕천에 백색의 홑이불을 감싼 형태이며, 궁중에서 사용되던 요는 민간용 요의 모습과 큰 차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긔를 보면, 요는 이불이나, 처네 보다 확연히 그 수량이 적었다. 요는 대부분 단 종류를 사용하였고, 요잇에 사용된 직물은 이불과 마찬가지인 서양목, 저포, 목면이었다. 요에 사용된 직물 중 문양이 있는 문단과 궁단이 많은 양을 차지하였다. 색상은 모두 다홍색이었고 요의 직물문양은 별문, 도류문이 쓰였다. 베개의 명칭은 베갯모의 문양에 따라 정해졌다. 베개의 양쪽 마구리에 수를 놓는 것을 수침(繡枕)이라고 하며, 수침은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되었다. 베갯모에 수를 놓기 위한 수본(繡本)은 조선조 궁중에서는 도화서(圖畵暑)에 있는 전문 화공이 그리는데 반해 서민들은 자신이 직접 그려 사용하거나 목판(木板)으로 사용하였다. 수본은 궁중용과 민간용에 구별이 있었으나 그림의 소재는 두 가지 모두 길상(吉祥)적인 의미를 가졌다. 베개의 직물은 이불과 같은 견직물을 사용하였고, 베갯모 문양은 자연문·기하문·길상어문·복합문이 있으며, 그 중 복합문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베개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남성과 여성이 사용하는 베개의 베갯모에 구분이 있었다고 하지만 베개유물을 확인한 결과 남자는 원형(圓形), 여자는 방형(方形)이라는 베갯모의 형태에 따른 남녀용의 구분이 반드시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방석의 형태는 크기나 모양이 일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방형의 방석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고 바탕감의 색과 테두리의 색이 보색의 조합을 이루었다. 방석에 사용된 직물은 단직물을 사용하였으며 방석을 장식한 자수 문양은 기하문과 자연문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어린이용 침구를 발긔에서 확인 한 결과, 처네와 요가 사용되었으며, 이불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용 베개는 연령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져 사용된 것으로 보아 어린아이를 위한 침구가 따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침구는 고급직물을 사용해 화려함을 추구하였고 사치 또한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침구는 예단용 침구를 통해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예단용 침구의 형태는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는 침구는 서양화된 생활 방식으로 인해 전통적인 침구의 모습을 상실했으며, TV나 영화 등 영상물에서도 침구의 고증은 결여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올바른 전통침구의 정립을 위해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침구 유물이나 문헌기록의 부족 때문에 몇몇의 한정적인 자료를 이용하여 조선시대 침구를 살펴보는 것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로 인해 조선시대의 침구의 모습을 상세하게 연구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음을 밝힌다.;This research is focused on studying beddings - Chimgu (寢具) - used during the Chosun Dynasty. References include, among others,『Balgui』, which is a valuable documentation on ancient Chimgu, namely, Ibul(coverlets), Yo(underquilts), Bege(pillows), and Bangsuk(floor cushions), other related literature, and relics dating from the Dynasty. The study shows that the use of Chimgu during the Chosun Dynasty was closely related to articles prepared for weddings. It was found that consecutive prohibitive policies enforced by the Imperial Court fell far short of curbing lavishness in the use of Chimgu during the whole reign of the Dynasty. In 1752, in an effort to root out the social evil, or the extravagance, it was ordered that Sanguiwon(尙衣院) published a set of rules, called Sangbangjungrye(尙房定例), for the people to go by. Examinations into Court Chimgu, however, find that lots of luxurious Chimgu made of silks were also widely used by the royalties. There was little difference between the Chimgu for Royal Family and that for common people. Chimgu are in general classified into Ibul, Chune and Yo. Ibul[衾] consists of Git, Dongjung, Naegong, and Hotibul, which is for basting inside the Ibul. There are three kinds of Ibul, which are Hatibul, Kyupibul, and Nubiibul. Ibul was made of a variety of silks such as Waeju and Sampalju. Mundan(紋緞) was the one that was used most often in the Daeryumkum and Soryumkum. As for colors of Ibul, a variety of tones of colors exist: greens, blues, and purples. And also seen in Ibul are various types of embroideries: plants, nature and mixtures of more than two types of embroideries. Note that as long as the types of embroideries are concerned, the last type took the majority. Chune, a coverlet lighter than Ibul, has similar patterns as Ibul except that unlike the latter, the former has only Dongjung without basting a single-layer quilt on it. Chune was documented with Chunui in『Balgui』and is of three kinds, which are Kyupchune, Hatchune, and Nubichune. Chune is made mostly of textiles such as Waeju and Sampalju, which are silks also used in making Ibul. When it comes to colors of Chune, it is found that a wider range of colors were employed for making Chune than Ibul. Generally, the majority of tones of colors for Chune were of greens and blues. Also found is that the number of embroidered ones was smaller than that of Ibul. It is also found that Chune used with Ibul for Royal Family was transmitted to the common people and they used it with simple cover and Podegi which was used to carry a baby on the back. And, it is confirmed that Murissuge which was used when women went out originated from Chune. Yo had the shape of wrapping Hotibul in white rectangle fabric without Dongjung. The Yo in the Royal Court was almost same as that for the public in shapes. We can find less Yo than Ibul or Chune. Dan was used for Yo and Seoyangmok, Jupo and Mokmyun were used for Yoit. Yo was usually made of Mundan and Kungdan with embroideries, and its color was red. Most embroideries were Pyulmun and Doryumun. The name of a Bege was determined by its embroideries. Suchim was the embroideries in both Magury of Bege and was used by the noble and the common. In royal court, Subon which became the foundation for Suchim was made by professional artists in Dowhasu. But, common people drew it themselves or used Mokpan. Subon was classified into Royal Subon and the Public Subon, and both had the meaning of lucky things. The fabric of Bege was silky material and the patterns of Begetmo were of nature, geometry, and mixture. Usually, mixture patterns were in most use. There is little difference between male Begetmo and female Begetmo which is confirmed by relics. This result is different to the existing opinion that the form of bridegroom's Bege was round and the form of bride's Bege was square. There was no standard form in Bangsuk, which was a floor cushion having the shape of a square. The color of border was complementary to the color of the body. Dan was one of the fabrics used to make Bangsuk and the geometric and natural embroideries seen in Bangsuk were in good harmony. There are Chune and Yo in Chimgu for children but Ibul is not used. It can be inferred that Chimgu for children was made due to differences in shapes of Bege based on ages of its users. High quality fabric was used for Chimgu and brilliance was pursued in the Chosun Dynasty. Now, Chimgu in real life is somewhat different in its shape from the traditional one as life patterns have changed since, and is only made for wedding presents. And, the pictures in TV or Movie was short of historical research on Chimgu. This study focuses on studying Chimgu used only in the Chosun Dynasty due to lack of references and materials for more ancient dynasties. So, its scope of study is rather limited in nature and a further study on Chimgu in more detail is in order.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의류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