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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安東地域 佛敎界의 量的 轉變過程과 그 意味

Title
16세기 安東地域 佛敎界의 量的 轉變過程과 그 意味
Other Titles
Quantitative Changes of the 16th Century Buddhist World in Andong and Their Historical meaning
Authors
梁慧媛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崔完基
Abstract
조선시대의 불교계는 그 이전까지의 시기에 비해 규모면에서 현저히 축소된 모습을 보이고 그 사회적인 위상도 낮아졌음이 분명하며, 이러한 현상은 불교계의 물적 · 인적자원을 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취해진 15~16세기의 각종 불교정책에 기초하여 진행되었다. 이와 관련한 모습은 선학들의 연구를 통해 충분히 확인되었는데,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고 이전 시대에 비해 눈에 띄게 제재를 받는 불교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살아남았는지, 또 조선시대에서의 그 존재 양상이 언제 결정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선왕조는 개국 후 취한 불교 억제책으로 국가공인사찰을 태조대에 242寺, 세종대에 36寺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즉 15세기 동안에는 재정적 지원을 받는 국가 공인 사찰들이 정책적으로 정리되고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국가의 先導는 이후 각 지역의 사설 사찰들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16세기는 사림파가 오랜 정권쟁탈전을 마친 후 중앙에 안착하고 이들에 의해 성리학적 사상이 확고한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향약과 같은 유교적 질서가 향촌사회에까지 보급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변화의 시기이다. 안동은 이러한 중앙의 정책적 영향과 지방에서의 성리학적 공고화를 동시에, 눈에 띄게 겪는 지역으로 주목할만 하다. 16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각종 관찬지리지에서 안동지역의 대표적인 불우로 꼽히던 곳들은 16세기 중후반을 지나면서 대부분 폐사되고 있으며, 15세기 후반에 관민에 의해 중수된 불교시설물이 16세기 후반에 관이나 양반들에 의해 고의로 훼손되는 사례가 보인다. 이 시기 일반민이나 승려가 아닌 양반에 의한 불우의 중창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이 경우 모두 시주자 집안의 선영과 관련된 佛事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와 같은 16세기 중후반의 모습은 이 시기 공고해지는 성리학적 성향과 관련 깊은 것으로 보이는데 불교에 대해 완고하게 돌아선 관의 입장이나 숭불성향으로 인해 파직당한 안동부사, 쇠몽둥이로 탑을 부수는 선비, 승려의 시가 배제되어 있는 영가지의 편집 등의 일례들은 그러한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하던 서원이 위치하거나 서당 · 정사 등의 시설이 다수 분포하던 지역은 강한 성리학적 태도를 반영하는 곳이므로 더욱 두드러진 불우의 감소현상을 나타내는데, 본부를 비롯한 임하현,풍산현의 경우가 그 대표적 예이다. 이렇게 폐사된 불우의 전각은 서원 · 서당 · 재사 등의 유교적 시설물로 변용되거나 건물 부재가 관의 기물로 전용되기도 하였으며 그 재산이 서당이나 서원으로 흡수되기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유생들의 강제 탈취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어 기존의 불교관련 시설이 성리학적 시스템 내로 적극 흡수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기 안동지역의 불우는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형태의 寺·刹이 전체의 절반 이상 폐사되고, 남은 불우의 다시 절반 이상은 규모 및 세력 면에서 영세한 庵의 형태로 존재하였다. 게다가 평지에 위치한 불우의 2/3가 폐사되어 버리고 그 결과 산지에 위치한 불우만 다수 남게 되어, 영가지 편찬 당시 존재하던 약 80%의 불우가 산지에 분포하는 상태를 보이게 된다. 즉 조선시대의 불교는, 국가의 경제적 지원이 중단되는 등의 불교 억제책과 동시에 진행되었던 성리학적 시스템의 강화로 그 규모나 세력면에서 위축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동지역에서 보이는 이상의 사례들은 그러한 분위기 하에서 향촌의 불우들이 사세 유지를 위해 작은 규모로 운영되거나 평지에서 밀려나 산지에 분포하는 특징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변화가 16세기 중후반에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요컨대 조선시대의 불교는 이전까지의 장구한 전통으로 일순간 사라질 수는 없었지만 정책적 · 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존재 양식을 찾아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16세기 중후반을 지나면서 불우들이 작은 규모의 전각을 가지고 산지에 존재하는 특징을 지니게 되며,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불우의 존재양식상 특징적인 부분으로 주목할만 하다. 이 시기 불교는 이러한 형태로 존재하면서 신앙적인 면에서 탈각되지 않고 조선시대를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Compared with its prior status, the Buddhist world in Chosun was much reduced in its scale, and apparently lowered in its place. These changes had been carried out by various policies against Buddhism adopted in the 15th ~ 16th centuries in order to constrict its material and human resources. This study, accepting the existing studies, takes aims at characterizing empirically in how the Buddhist world had survived in those conditions where it was oppressed, and when its existential aspects had been established in the Chosun period. For about a hundred years since its foundation, the Chosun Dynasty had disposed of the officially authorized national Buddhist temples through national policies, which seem to have had influence on private temples in various areas. Andong is worth considering as it had been under the influence of the central government's policies and had undergone Confucian consolidation, simultaneously. Most of the Buddhist sanctums among the most representative in the Andong area that could be seen in various geographies edited by government until the early 16th century were closed in the middle and late 16th century, and there were cases in which those Buddhist facilities that had been rebuilt by government and people in the late 15th century were damaged deliberately by the government or the upper class, Yang-ban(兩班). Sometimes some Buddhist sanctums were rebuilt, but all of those rebuilting were carried out through the Buddhist services for the donators' ancestral burial grounds. In addition, those areas where Confucian lecture halls were built, and many institutions like Seowon(書院: a building for study where one could sit and read silently) and Jungsa(精舍: a building to accomodate a monk who managed the burial grounds of some family in the era of Chosun Dynasty) were distributed reflected strong Confucian attitudes, and showed the phenomena of much sharper decline in the number of the Buddhist temples, of which cases Imha-hyeon(臨河縣) and Pungsan-hyeon(豊山縣) as well as regions of the headquarters were the most typical ones. The large buildings of the Buddhist temples closed in those ways were transformed into Confucian facilities like Seowon(書院), Seodang(書堂), Jaesa(齋舍) or their structural materials were diverted into properties of government, which shows their aspects in which they were actively absorbed into the system of Confucianism. Furthermore, more than half of the large and formal Buddhist temples in the Andong area in that period had been closed, and more than the other half of the rest temples had survived in the form of a small?scale Buddhist cell. In addition to this, temples in mountainous areas only were mostly left untouched whereas 2/3 of the Buddhist temples in plain areas had been closed. Thus, about 80% of the Buddhist temples located in mountainous areas when "Yeonggaji(『永嘉誌』)" was being written. Consequently, it is conceivable that Buddhism in the Chosun period was reduced both on the sides of scale and power due to the strengthening of the Confucian regime along with the policies against Buddhism such as interruption of financial support from government. The above mentioned cases of the Andong area show that those Buddhist temples in rural districts were managed in a small scale in order to survive, or located in mountainous areas dispelled from plain areas under such conditions, which verifies that these changes occurred intensively in the middle and late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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