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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호랑이 그림 연구

Title
동아시아 호랑이 그림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Tiger paintings of East Asia -Focused on the 'Ch'u-shan hu(出山虎)' and the 'tso-hu(坐虎)'-
Authors
이제원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In this thesis, the tiger paintings since the Northern Sung Dynasty are taken as objects. Focusing on the 'Ch'u-shan hu(出山虎)' and the 'Tso-hu(坐虎)', they are examined in terms of the meanings of the icon and form and style of the paintings throughout Korea, China and Japan. The 'Ch'u-shan hu', which means a tiger appeared from a mountain, has aspects of dynamic and strong images of tiger as a beast that frightens men and other animals. And these aspects laid a tiger as a subject of elimination and comprehension so a tiger became as a symbol of a good government. As a king of animals, a tiger is also presented as a meaning of a dignified being. In the 'Tso-hu', a sit tiger is represented as a being of commanding presence which he arouses respects and also as an auspicious being with transcendental power along with dragons. As considerations on the other objects in the screen, the pine trees, usually painted in the background with meanings of wise and firm hero, shows a countenance of a tiger, king of all. And the pine trees were also used as a symbol of dragons that a dragon often referred to an old pine tree as a metaphor. The bamboo, often appeared in the background as well as pine trees, 'the paintings of tiger and bamboo' could be approached in the context of Buddhist painting and being analysed as containing the meanings of the place of meditation or spiritual awakening. And, in Japan, there is an old saying that "to set a tiger free in the bamboo forest"which means letting someone of overwhelming influence to perform in full. In this case, 'the bamboo forest' means the space that a tiger can act with its free will. For the birds that are frequently drawn with tigers, especially the terrified ones that crying out and flying up, there can be found the close relationship with the 'Ch'u-shan hu'. This marriage of the tiger and the bird motif seems to have appeared in the Northern Sung Dynasty at latest. And the bird motif, as dramatic elements, elevates the atmosphere of the work in responses between the objects and gives the movement on the picture so that it ultimately arouses the poetic effect to the viewer. In the Chinese tiger painting, examined on the 'Ch'u-shan hu' and the 'Tso-hu', the 'Ch'u-shan hu' seems to be accomplished by Chao Miao-ch'o(趙邈齪), the best tiger painter from the Northern Sung Dynasty. In the works attributed to him, by the tiger's side part of the body, the turned around head shown about 7th of, the raised tail and waking towards with it's front leg crossed, it shows a typical representation of Chao's 'Ch'u-shan hu'. This typical feature can be identified in the various works that are painted later. It is examined, as often, with some transformations such as widened legs in the form of '八' or gathered. The 'Tso-hu', attributed to Mu Ch'i(牧谿), is regarded as the best. In the works, with three patterns of the sit tiger, it is shown some transformations mainly according to the locations or conditions of the head. The existing works show that the transformations in the 'Ch'u-shan hu' and the 'Tso-hu' completed in the Ming Dynasty at latest and accomplished as main icons. In the Qing Dynasty, there doesn't seem to be much change on the tiger icon itself. However, the tiger paintings by various characteristic artists including the Yangzhou School(揚州畵派) often show some original postures or compositions with the way of the icon has been dealt with traditionally. And the distinct change can be seen in terms of the composition of the picture by omission of the background elements. The tiger paintings in Korea, with the reception of the Ming's style in the early Chosun Dynasty, there are common elements of the tiger icon as of those in the 'Ch'u-shan hu' and the 'Tso-hu'. As in the late Chosun, although the paintings don't show great changes in comparison with the earlier period, it is recognizable that they have the icon of the 'Ch'u-shan hu' and the manner of academic style. For the icon of the 'Tso-hu', it tends to be identified in the folk paintings. Over the whole history of painting, with the appearance of the painters such as "Kim Hong-do"and by the productions with higher realism thorough the detailed sketch, the increase in quantity of paintings and the improvements in quality opened another dimension to the tiger painting. Also, in the late Chosun, a tendency of simplified background is recognizable as this stands out in the folk paintings. In Japan, it was the Muromachi period that the tiger became one object for animal and bird paintings. The drawing of bamboo and tiger in ink-monochrome which is influenced by Mu Ch'i are passed down by many artists. The tiger with intensive decorations and saturated colours appeared later throughout the Azuchimomoyama and Edo period. The figures are applied in various ways as well as the 'Ch'u-shan hu'. Taking the portrait of 'Ch'u-shan hu' with the bamboo forest background, the tiger, being interpreted as a bellicose beast, was preferred as a symbol of a commander. Along the rising trend of the new painting, the tiger drawing engages with the transfiguration as the 18th century began that is to be the realistic sketch style mainly led by Maruyama School(円山派). It is presumed that, based on the established figure, it was applied with the experiences from the real animals. And the lifelike sketch for the hairs which was accessible adds to the reality, yet, it was not based on the real observation. So, in spite of the original experiments, there is a limitation in terms of description of the body structure that brings to the contradiction.;본 논문에서는 중세적 감상화로서의 호랑이 그림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出山虎와 坐虎를 중심으로 그 도상적 의미와 현존작을 통해 중국·한국·일본에서의 전개양상을 살펴보았다. ‘산에서 나온 호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출산호는 행동에 나선 동적인 모습으로, 주변의 동물들과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맹수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띠고, 이러한 면모는 호랑이를 제거와 복속의 대상으로 상정시켜 이를 통해 善政의 표상체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또 스스로가 뭇 동물들 위에 군림하는 百獸의 왕으로서, 선정을 통해 위엄을 세우는 위정자로서의 의미도 함께 나타내고 있다. 앉아 있는 호랑이를 의미하는 좌호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위풍당당한 존재인 동시에, 용과 함께 초월적인 힘을 갖는 상서로운 존재로서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함께 살펴본 첨경물의 의미 가운데, 배경목으로서의 소나무는 지혜롭고 굳건한 영웅호걸의 의미로 등장하여 百獸之王으로서의 호랑이의 면모를 비유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이와 함께 龍이 老松을 비유하는 말로 자주 언급되는 것을 통해 때때로 소나무는 용을 상징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와 함께 배경목으로서 자주 등장하는 대나무, 특히 수묵양식의 竹虎圖는 불교회화적인 맥락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명상의 장소이자 깨달음을 얻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는 맹위를 떨치는 사람 등이 그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태로 둔다는 의미인 “호랑이를 자유롭게 竹林에 풀어놓다”라는 속담이 있어, 이 경우 죽림은 호랑이가 마음껏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호랑이와 함께 자주 그려지는 鳥類, 특히 호랑이를 보고 놀라 날아오르고 소리치는 驚鳥의 경우 주로 출산호와 밀접한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호랑이와 경조모티브와의 결합은 늦어도 북송대에는 출현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경조 모티브는 대상물 상호간의 호응관계를 통해 작품 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劇的要素로, 이를 통해 감상자에게 시적정취를 불러일으킨다 할 수 있다. 출산호와 좌호를 중심으로 살펴본 중국의 호랑이 그림에서 출산호는 북송대 최고의 호랑이 그림 화가인 趙邈齪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傳稱作에서 볼 수 있는, 신체는 측면을 드러내고, 고개를 살짝 돌려 안면의 7분면 정도를 보이며 꼬리를 치켜들고 앞다리를 교차시켜 걸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전형적인 출산호 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확인 가능하고, 때때로 호랑이의 앞다리를 ‘八’형태로 벌리거나, 사지를 가지런히 모으거나 하는 변형을 이루기도 한다. 좌호의 경우 현존작 가운데에는 牧谿의 전칭작을 最古로 삼는데, 그의 전칭작에서 볼 수 있는 좌호의 세 가지 유형과 함께, 목계 이후 신체와 頭部를 모두 측면으로 묘사하는 경우와 고개를 뒤로 돌려 시선을 몸의 뒤편을 향하는 변형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출산호와 좌호의 변형은 늦어도 명대에는 완성되고 주요 도상으로서 정착되었음을 현존작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청대에는 기존에 자주 다루어지던 출산호와 좌호 도상은 별다른 도상적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그려지는 한편, 揚州畵派를 비롯한 다양한 개성적인 화풍을 자랑하는 화가들에 의한 호랑이 그림은 대개 출산호나 좌호 등의 기존에 즐겨 다루어지던 관습적인 도상을 취하면서도 때때로 작품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의식에 따라 독자적인 자세나 구도의 것들을 취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배경요소의 생략을 통해 화면구성의 변화를 취하고 있다. 한국의 호랑이 그림은 조선시대 전반기에 명대 화풍의 수용과 함께, 출산호나 좌호와 같은 도상적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후반기로 접어들면, 호랑이 그림에서는 전반기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으나, 기본적으로 도상에서는 출산호와 양식상으로는 원체화풍이 주를 이루었다. 좌호 도상의 경우 민화류에서 주로 확인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함께 회화사 전반에 걸친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은 金弘道와 같은 대가의 등장을 통해 정밀한 사생력을 통한 높은 사실력을 지닌 작품이 제작됨으로써 호랑이 그림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후반기의 호랑이 그림에서는 배경이 간략화 되는 경향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는 민화류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본에서 호랑이가 영모화의 한 화제로서 본격적으로 회화화 된 것은 室町기로, 목계의 영향을 받은 수묵 죽호도가 다양한 화가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이후 安土桃山時代와 江戶에 걸쳐 장식성이 강화된 진채의 호랑이 그림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出山虎를 위시한 다양한 도상이 적용되고 있다. 竹林을 배경으로 출산호 도상을 취하는 호랑이 그림은 호전적인 맹수로서의 호랑이로 해석되며 이 시기 무장들의 표상체로서 선호되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접어들면서 호랑이 그림은 새로운 회화경향의 대두와 함께 변모를 맞이하게 되는데, 호랑이 그림과 관련하여 특히 円山派를 중심으로 한 사생화풍을 들 수 있겠다. 이들에 의한 호랑이 그림은 기존의 호랑이 그림을 모본으로 하고 관찰이 가능한 동물로부터 터득한 실재감을 적용시켰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에 손에 넣는 일이 가능한 호피를 사생함으로써 사실감을 더하고 있으나 이러한 참신한 시도는 실제 관찰을 통한 것이 아니므로 신체묘사에 있어서 신체구조상의 모순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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