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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前半期 瓷器에 나타난 中國 北方 陶瓷의 影響

Title
高麗 前半期 瓷器에 나타난 中國 北方 陶瓷의 影響
Other Titles
Northern Chinese Ceramics Influence on the earlier Goryeo Wares
Authors
鄭信玉
Issue Date
2004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尹龍二
Abstract
The position of ceramics in history of Korean arts has great meaning in quality and quantity. Therefore, beginning of ceramic manufacture, particularly dates and methods has been surveyors' main interests. At present, rise of Korean local ceramic culture seems to be absolutely influenced by Southern Chinese Zhejiangxing Yuezou-yao(中國 南方 浙江省 越州窯). The aim of this dissertation is to look at influence of northern Chinese kiln industry and to newly understand the earlier Goryeo celadon's characteristics and trends of kiln industry. On one hand, the earlier Goryeo era showed strong influence of northern Chinese kiln industry specially concentrated on Goryeo celadon in the earlier tenth to twelve centuries. The year of 1157 AD when the military action of warriors occurred was the last of earlier Goryeo period. The north of China indicates northern parts of Yangzi River(揚子江) and it includes not only Henan(河南), Hebei(河北), Shanxi(山西), Shaanxi(陝西), Shandong(山東) but also Manchuria(만주) and Inner Mongolian Region(내몽고) where Liao Dynasty(遼) had conquered. More details, Yaozhou-kiln(耀州窯), Ru-kiln(汝窯), Ding-kiln(定窯), Cizhou-kiln(磁州窯) of northern Song kilns(北宋 가마) and Gongwa-kiln(缸瓦窯), Shangjing-kiln(林東窯, 林東遼上京窯) Longquanwu-kiln(龍泉務窯) of Liao periods(遼代) are main targets of this dissertation. This dissertation researches backgrounds of the earlier Goryeo ceramic products in the category of trades and exchanges in the relations of Goryeo, northern Song and Liao Dynasty and it illustrates aspects of northern Chinese ceramic production. Moreover, this dissertation surveyed influences of Goryeo celadon and northern Chinese kiln industry as viewpoints of production technology, styles, types decoration techniques and designs. As a result of this, we could see Korean local kiln industry shafted an early stage to a middle one. The earlier Goryeo ceramic had developed as it accepts several factors of northern Chinese kiln industry on the basis of southern Chinese kiln technology and production of Goryeo white porcelain had started related to northern Chinese white porcelain kilns included Ding-kiln systems(定窯系). Furthermore, incised clay and iron painting techniques have appeared and some types of ceramics were accepted by Goryeo ceramists in the tenth century AD. In the eleventh century, formal severance between Goryeo and Song Dynasty for eighty years made Goryeo kiln industry more independent and autonomous. Since 1071 AD, when Goryeo and Song had diplomatic relations again, Goryeo had taken new factors such as burning skills, styles and types, decoration techniques and designs from northern parts of China at the same time. Particularly, we can find active and interactive influences at this stage between Goryeo and northern parts of China. Finally, we could see strong influences from northern Chinese region to Goryeo on the border of earlier and middle period. These influences are generally worthy of notice in Korean ceramic history.;한국 미술의 역사에서 도자기가 차지하는 위치는 양과 질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에서 언제,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瓷器 제작이 시작되었는가는 그동안 관련 분야 연구자들의 주요한 관심거리였다. 현재 국내 자기 문화의 발생은 築窯 방식, 가마 구조, 번조 도구의 사용, 생산 제품의 조형적 유사성 등으로 보아 중국 南方 浙江省 越州窯와 절대적인 영향 관계를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본 논문은 국내 자기 제작 개시 단계에 나타난 중국 남방 월주요의 절대적인 영향을 인정하는 가운데 이와는 구별되는 중국 북방 陶瓷의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고려 전반기 자기의 성격과 窯業의 흐름을 새롭게 파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고찰의 대상이 되는 시기는 중국 북방 도자의 영향이 고려 자기에 특히 집중되는 10~12세기 전반으로, 국내 자기 요업의 개시 이후 武臣의 亂이 일어난 1157년경까지이다. 앞으로 본 논문에서는 이 시기를 고려 전반기로 규정할 것이다. 한편 중국의 북방은 揚子江을 기준으로 이북 지역을 가리키며, 河南, 河北, 山西, 陝西, 山東省 등지와 遼가 점령한 만주와 내몽고 일대를 포함한다. 물론 중국 남방과 구별되는 온전히 북방적인 기술적, 조형적 규정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국내 자기 요업 개시 이후 청자 생산과 얼마의 시간 차를 두지 않고 백자가 제작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唐代 이후 도자 요업은 흔히 ‘南靑北白’이라는 용어로 설명되듯이 대륙의 남방에서는 청자가 북방에서는 백자가 주력 생산되었다. 관련하여 국내 자기 요업 이른 시기 청자의 생산은 남방 월주요 요업 기술의 적극적인 수용 아래 시작되었기 때문에 남방적 요소로 볼 수 있다. 이에 상대하여 국내에서 청자 제작과 거의 비슷한 시점에 이루어진 백자의 생산은 중국의 북방적 요소일 가능성이 있다. 즉 중국에서 백자 제작은 전통적으로 북방에서 남방보다 먼저 시작되어 발전하였다. 따라서 국내 백자의 생산은 중국 북방의 諸窯, 대표적으로 邢窯와 그 전통을 이은 定窯 등지에서 비롯한 백자 제작 기술의 수용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10~12세기 전반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는 고려(918~1392)가 건국하여 자체적 발전과 성숙을 도모하는 가운데 한국 중세의 새로운 장이 열렸으며, 인접국인 중국은 唐(618~907)의 멸망 이후 五代(907~978), 北宋(960~1127)으로 왕조들이 교체되는 시기였다. 중국 북방에서는 거란〔遼〕(907~1125), 여진 등이 자리를 잡고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974년 거란이 국호를 遼로 개명하며 중국 대륙의 북방에 확고한 세력권을 형성함에 따라 麗宋 간 사회, 문화, 경제 전반에 걸친 교류는 전보다 더욱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성종 12년(993) 거란의 고려 침입 이후 麗宋 사이 공식 국교는 단절되었으며 80여년이 지난 문종 25년(1071) 麗宋 국교가 재개된다. 우리 나라의 자기 요업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당 시기 국내외의 정치, 사회 변동의 구체적 조건에 따라 전개되었다. 따라서 고려 전반기 자기 요업은 麗宋 국교 단절기(993~1071)를 기준으로 단절 이전과 국교 재개 이후로 단계 구분이 가능하다. 그리고 각 단계별 고려 자기의 변화 양상에 대한 파악과 도자사적 성격의 부여가 고려 전반기 도자 전개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고려 전반기 도자에 나타난 중국 북방 諸窯의 기술적, 조형적 영향은 10세기, 11세기, 11세기 말~12세기 전반의 이르는 세 단계 시기 구분을 통하여 접근 가능하다. 그동안 고려 시대 도자에 대한 연구는 유물 자체에 집중하여 기형과 문양을 중심으로 조형적 특성을 살펴보고 그 도자사적 의의를 밝히거나 청자의 발생, 또는 고려 후기 干支名 象嵌 청자의 제작 시기 규명 등 편년 문제에 집중하여 이루어졌다. 특히 국내 자기 요업의 개시 시점에 대해 많은 관심이 기울여져 왔다. 그 결과 90년대 이후 활발히 이루어진 고고학적 연구 성과에 힘입어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자기 요업의 시작이 중국 남방 월주요의 절대적인 영향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려 도자와 중국 북방 諸窯와의 영향 관계는 큰 주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필자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본 논문에서 국내 자기 요업의 개시 단계에 나타난 중국 남방 월주요의 절대적인 영향을 인정하는 가운데 중국 북방 도자의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고려 전반기 자기 요업의 성격을 새롭게 파악하고자 하였다. 먼저 고려 전반기 도자 제작의 배경을 주변 정세의 변화와 고려와 북송, 遼의 문물 교류, 중국 북방 공예 기술의 유입과 교류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았다. 또 이 시기 중국 북방 도자의 제작 양상을 耀州窯, 汝窯, 定窯, 磁州窯 등의 北宋 가마와 缸瓦窯, 林東窯, 龍泉務窯 등의 遼代 가마로 구분하여 정리해 보았다. 이후 이상의 과정을 바탕으로 고려 전반기 자기에 나타난 중국 북방 도자의 양상을 제작 기술, 기종과 기형, 장식 기법과 문양으로 세분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고려 전반기 자기의 전개는 이 시기 중국 북방 도자와의 영향 관계 아래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즉 이상의 과정을 통하여 고려 전반기 자기가 어떠한 단계를 거치며 전개되었는지 구체적 변화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으며, 고려 자기 요업이 초기에서 중기로 이행하는 단계의 변화도 더불어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10~12세기 전반 고려 자기는 북송과 遼를 중심으로 한 중국 북방 지역과 긴밀한 교류를 가지며 전개, 발전하였다. 고려 전반기 자기의 성격과 요업의 변화는 麗宋 국교 단절기(993~1071)를 기준으로 단절 이전과 국교 재개의 세 단계로 구분하여 파악할 수 있다. 먼저 국내 자기 요업 초기 단계인 10세기에는 중국 남방 월주요 요업 기술 기반 위에 중국 북방 도자의 요소들이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 이 단계의 끝 무렵에 고려는 중국 북방으로부터 철화와 상감의 장식 기법을 습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시기 주목되는 것은 청자 제작에 뒤이어 定窯系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북방 백자 가마들과의 기술적인 연관 아래 고려 백자가 생산되었다는 사실이다. 11세기 들어서 공식적인 麗宋 관계의 단절로 80여년 가까이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은 침체된다. 이 시기 宋商의 활발한 활동과 契丹系 귀화인의 고려 공예 산업 종사 등이 이루어져 국내 도자 요업의 전개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으나 결정적으로 기능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고려 자기 요업은 자체적인 발전과 변화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북송과의 국교가 재개된 1071년 이후 12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 고려는 중국 북방으로부터 번조 기술, 기종과 기형, 장식 기법과 문양 등 새로운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고려 시대 고급 자기 번조 도구로 알려진 규석 받침은 汝窯系 支釘 받침에서 영향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양한 기종과 기형, 일부 문양 소재를 통하여 고려와 중국 북방 도자가 나눈 일정한 영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또 일부 고려 상형 청자는 遼 三彩 기물과 긴밀한 영향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압출양각 기법의 등장과 철화 기법의 본격적인 적용 역시 중국 북방과의 교류 아래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 단계에 고려와 중국 북방과의 활발한 상호 영향 관계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결국 고려 자기 요업의 초기와 중기를 나누는 경계에 중국 북방으로부터의 영향이 상당한 강도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즉 고려 전반기 자기는 중국 남방 월주요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요업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후 북방 지역과 일정한 영향 관계를 지속하였다. 특히 북방 도자와 나눈 영향 관계는 기술, 조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확인되며 도자사적으로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또한 11세기 말~12세기 전반 그 이전 단계보다 급속하게 들어온 중국 북방 도자의 영향은 고려 자기 요업의 초기와 중기를 나누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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