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28 Download: 0

大院君 執政期 Oppert事件 硏究

Title
大院君 執政期 Oppert事件 硏究
Other Titles
Dissertation on the Oppert Event under the rule of Taewon-gun
Authors
許榮珍
Issue Date
1989
Department/Major
대학원 한국학과
Keywords
대원군집정기Oppert사건오페르트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本稿는 大院君 執政期인 1866年과 1868年에 있었던 Ernst Oppert의 3次에 걸친 通商要求와 그에 대한 朝鮮의 對應樣相을 考察하여 보고 이 사건이 갖는 韓國史에서의 의미를 推論함과 아울러 당시 朝鮮社會의 모습을 부분적으로나마 밝혀보고자 하는 目的에서 서술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 Ⅱ장에서 1860年代 朝鮮의 對外的 狀況과 그에 대한 朝鮮內의 認識이 어떠했는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아편전쟁과 北京함락이라는 西洋勢力과의 충돌사건을 겪은 淸國과 이를 목격한 日本이 강한 위기의식을 갖고 近代化를 위한 일련의 改革을 추진하고 있었음에 비하여 朝鮮은 이상의 對外狀況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하지 못한채 鎖國政策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時期에 오페르트의 통상요구가 행해졌던 것이다. Ⅲ장에서는 오페르트의 저서인 「朝鮮紀行」의 주요내용과 여기에 나타난 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았다. 「朝鮮紀行」은 地誌·人種·國法과 政體·歷史·風俗 및 관습·宗敎·言語와 文字·産業·博物·商業등 사회 각분야에 걸친 내용을 6章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어 19세기 西洋人에 의한 韓國硏究의 하나로서 書誌學的 價値를 지니며, 또 오페르트가 行爲의 前提로서 갖고 있던 朝鮮에 대한 인식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그는 朝鮮이 人的·物的 資源이 풍부하여 발전가능성이 큰 나라로서 鎖國은 大院君 個人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官吏와 一般人 사이에는 불만이 고조되어 外國과의 交涉을 희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Ⅳ장에서는 1·2차 항해의 목적이 首都로 가는 水路의 探索과 通商을 위한 협상에 있었으며 이것이 公忠道 水使·海美縣監등 지방관헌들의 '國禁'을 이유로 한 일관된 거부답변으로 좌절되는 과정을 問情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3차 항해에서 大院君의 父 南延君墓에 대한 盜掘이 행해지게 된 경위와 朝鮮人 天主敎徒의 가담, 德山에서의 實行과 실패과정을 史料와 「朝鮮紀行」의 항해기록을 통해 더듬어 보았고 德山을 떠난 오페르트 일행이 강화도 부근에서 大院君과의 통상협상을 요구하다가 永宗島에서 儉使 申孝哲의 부대와 接戰하게 됨을 살펴보았다. 또 사건 후 朝鮮側은 天主敎徒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西洋勢力의 侵入과 이들과의 접촉을 배척하는 敎書를 내리고 처벌을 엄히 하는등의 한층 강화된 鎖國政策을 실행함을 考察하였다. Ⅴ장에서는 이상의 考察 통해 오페르트 사건은 個人次元 에서의 通商要求였으며, 특히 3차 항해에서 일으킨 '德山作變'은 다른 歐美列强들의 武力示威·侵功이 西洋文明技術에 대한 충격을 수반하는것과 달리 보다 倫理的인 측면에 강한 충격을 주었음이 특징으로서 결과적으로 朝鮮의 鎖國攘夷政策이 正當化·强化되는 한 요인이 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This dissertation is for two purposes. First, it is an interpetation and an evaluation on A Forbidden Land: Voyage to Korea by E. Oppert published in 1880. Second, it is a study on Chosun's counteraction in terms of her stages of strengthening isolationism against Oppert's three times voyages to Chosun and his request for commercial intercourse. Chapter 2 is on Oppert's research into Chosun examined in relation to the contemporary circumstances of East-Asia; from 1840's to 1950's China and Japan were forced to open commercial intercourses and in 1860's carried into execution a serious of revolutionaly projects for modernization. Chapter 3 is to review the purposes of publication and the contents of Opert's book and then to evaluate their values as publications for Korean studies. Finally his understanding of Chosun as the preconception for his activities were analysed. Chapter 4 is focused on the pruposes and results of his three voyages. Here, I tried to clarify that the purposes of his first and second voyages were the opening-up of waterway to the capital and the request for commercial intercourses. Then the processes in which his purposes were frustrated by the persistent refusals of local administrators are explained. His third voyage is viewed in connection with details of illegal digging out of Namyoun-gun. It's result was the strengthening of isolationism of Chosun. In conclusion, in the embryonic phase of Korean study, the writing of Oppert should be highly evaluated in its detailed and accurate introductions about Korea considering that most reference for Korean studies were reportages on adventures in Korea. Furthermore, his logbook is valuable as a secondary source in studying the Oppert Event. The characterismics of this event is that it gave a great great shock to the ethics of Confucianism, which inevitably resulted in the strenthening of isolationism of Chosun while other invasions of Western powers gave a shock to technological aspects of Chosun at that time.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한국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