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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에 내재된 연암의 종교사상 연구

Title
[열하일기]에 내재된 연암의 종교사상 연구
Other Titles
Study of the religious thought in yeolha-il ki
Authors
유위경
Issue Date
1996
Department/Major
대학원 한국학과
Keywords
열하일기내재연암종교사상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박지원은 1737년에 태어나서 180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실학의 三期 중에 이용후생학파에 속하는 시기를 살다가갔다. 또한 그는 풍자소설가로서 이름이 높다. 그래서 그는 이용후생의 실학자로서 또는 풍자소설가로서 그 특색을 지니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를 유교의 정통을 고수한 양반 사대부로 보았다. 그런 반면에 그가 법고창신의 문학론을 펼쳤듯이 그가 상고와 변통을 함께 활용한 사상적인 측면을 다루었다. 그는 정통 유가적인 사상을 착실하게 연마한 사람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유교 이외의 종교적인 지식을 흡수하고 유학 이외의 다른 학문들을 수용하여 유교의 관념을 깨고 나와서 유교의 관념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주체적인 진리의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그렇게 변화하고 새로워진 유학이야말로 원래의 유학의 색채를 선연하게 지닐수 있는 유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 되지 않는 고착된 유학은 썩고 고루한 유학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의 유교적인 지식은 오직 나라를 위하고 생민을 위하는 생각으로 귀착된다. 그의 유학은 나라를 위하는 철학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의 경제를 중요하게 생각한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그가 나라를 위하는 정신을 닦기 위하여 三敎를 통틀어서 인격을 수양하는 수신의 도를 행한 것이다. 그는 유교적인 모든 관념을 넘어서서 근본경험을 하였다. 그는 의식하는 대상과 의식하는 주체적인 자아를 망각하고 적멸의 철학적인 순간을 경험하였다. 그는 이 경지를 頓悟나 內觀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는 이러한 근본적인 경험을 통하여 새로운 인격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 후에 그는 천명의 자각으로서 자기의 사명을 아는 知天命의 인간이 되었다. 그의 천명의 일은 그의 재능이 나타나는 文의 일을 하루하루 닦는 데 있었다. 「열하일기」 는 바로 그의 천직의 완수요, 천명의 완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Park Ji-won was born in 1737 and died in 1805. Born in the times of Practical Science, he presented us a guiding light toward a new era. Viewed from the three categories of Practical Science, he belongs to the utilization and public welfare school. And he also attained great reputation as a satiric novelist. Therefore, he has a character of both satiric novelist and utilization, public welfare realist. In this study, however, the fact that he was also a persistent holder to tradition beside the above two is revealed as well as that he was an awakened person who perceived a truth through deadly experiences. People call him a utilization and public welfare realist, and he wrote in Yeolha-Il Ki after he visited the border land of China and saw native's rich lives that 'Public welfare comes after utilization and right morality comes after public welfare.' Many studies have quoted and discussed this sentenced to show that he had an attempt to develop Yi dynasty's industry for public utility. But though he contributed a lot to activate the utilitarian industries of Yi dynasty, he was a man who sought for absolute truth to have an insight toward man's life and universe. As a religious being, he put up with and got over death. While much concerned about secularly industrialized economy he trained and cultivated himself to have an awakening beyond life and death. His cultivation of his mind and character ained at realization of absolute truth, but what he ultimately tried to accomplish as an enlightened one transcending life and death was to help the dynasty's management of nation. His proposal to establish a capital where three divided religion could be symbolically unified had a meaning of unselfish service for the government. His philosophy was that only a wise man, enlightened and awakened by a truth, could be a ruler of on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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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한국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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