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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

Title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
Other Titles
The experimental art and society in 1960-70's Korea
Authors
김미경
Issue Date
2000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송미숙
Abstract
This thesis is dealing with the experimental art of Korea developed in 1960-70 s. It was not limited in the field of already established painting and sculpture but embraced experimental objet and installation, happening, film and the very first examples were done. They were including the works of Lee Seungtaek of Stone of Godere and smoke, the first happening in Korea of [Exhibition of Young Artists union], the works of Jung Gangja and Sim Sinhee strongly raised the status of Woman, the very first avant garde film . But the work of affirmation of them is the only incidental results. I would start from the proposition that Art is not separate from the age and the phenomenon of society. It is not attempted to study to understand the Contemporary Art of Korea in the violent agitation state of 1060-70 s Korean society. But this is different from Minjung Art because experimental artist in those days were not inclined to political propensity. It reflects the state of the 1970 s Korean society in which Artists didn t have their organizing ability for antigovernment activity. The experimental artist worked individually and intermittently, in spite of especially《the fourth group》was founded with the idea for unification of society and art criticizing the already established art world and the problem of it s system, 《the fourth group》was not accepted affirmatively because it s idea was misunderstood politically. The experimental art has not been observed keenly comparing with Korean Informel movement ot Monotone painting for the reason why it has not only been worked intermittently but firmed collective body continuously. But the society could have it s maturity when the various art phenomena coexists together in the socoety. This thesis has not intended to speak for the situation of experimental artists. They had rather have the position of criticizing the established art world and their attitudes for the political and social phenomena were vague and ambiguous. But despite of them, it is obviously meaningful work to connect Korean Art and society and to read the situation of that society. So I intended to confirm the possibility of communication of art and society from extracting the works that were regarded as reflecting the society of those days. With that, I connected Korean society and art situation and as well those of Japan as Europe and United States. It is obvious that Korean experimental artists took the information from the foreign magazine and started their work from the information. there were many interpretations of passive reception or blind imitation pointing out the similarity but Korean experimental artists s works were different from the works of abroad because they were builded up in the situation of Korean local and mental situation. This thesis treated the second [Zero exhibition} and the activity of 《Young Artists Union》, the happenings before the construction of 《The fourth group》. They are considered as the examples of social proposal of 1960 s. And this treated the 1970 s Korean experimental art from the short activity and breakdown of《The fourth group》to 《AG》(Avant Gatde association) and《ST》(Space and Time). Finally it is treated how experimental art s states changed in the situation that Korean Monotone painting became influential and gather strength. Experimental art in those days shrunk but it results from not the lack of solidarity or self confodence but the transition of power in art world and suppression of Korean government. I validated the 7 newspapers of Seoul, and 5 magazines published in 1960-70 s in Korea for supporting it. Ultimately this thesis has the meaning that reinquire experimental art in Korean society and the capacity of art in society giving the meaning vividly excavating the works that reflects the situation of the society and communicates with it beyond the boundary of established painting and sculpture. ; 이 글은 1960-70년대 전개된 한국의 초기 실험미술을 다룬 것이다. 여기서 실험미술이라 함은 기존의 회화와 조각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과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루어진 작업들을 말하며 이 시기에 한국 최초의 사례들이 행해졌다. 1950년대 말에 시작된 이승택의 고드랫돌과 연기 등 기체 작업으로부터 [청년작가연립전]에서 행해진 최초의 가두시위와 <비닐우산과 촛불> 해프닝, 최초로 여성성을 강하게 부각시킨 정강자와 심선희의 작업들, 최초의 전위적인 <1/24초의 의미> 필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국 최초의 시도들을 확인하는 일은 이 글에서는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인 이 글의 입장은 예술이 시대와 사회현상으로부터 전적으로 독립될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미술사적으로 예술을 사회사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5. 16에서 유신시대로 이어지는 1960-70년대의 격동기 한국의 사회사 속에서 예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는 단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반성해 보면서 참여미술과 순수미술을 구별하기 이전에 예술이 사회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태도가 무조건 억제되었던 유신의 여파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980년대 민중미술이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사회에 대해 발언했던 것과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실험미술의 성격은 구별될 수밖에 없다. 이 시기의 실험미술가들은 적극적인 정치성향을 띠지 않았으며 소위 소외된 민중 의 반항적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미술이 어떤 형태로든 집단적으로 표면화되지도 않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1970년대 유신의 서슬 아래 반정부 활동을 표방하는 참여예술이 아직 조직화되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사회에 대한 발언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시기의 실험미술은 대부분 개인작업으로서 단발적으로 행해졌으며 특히《제 4집단》같은 소집단이 예술 내적인 문제에 침잠하는 기성 예술계와 그 제도적 문제점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와 문화를 통합하려는 이상을 갖고 결성되었어도 그 이상이 정치적으로 오인되어 긍정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 1960-70년대라는 한국의 격동기 상황 속에서 예술이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과 그 소통의 노력이 좌절되어온 실정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고 실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싶다. 조형적 측면을 중시하는 순수미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실험미술이 소수에 의해 간헐적으로 이루어졌고 지속적으로 집단화되지 못했다는 한계 때문인지 그것은 한국의 앵포르멜 운동과 모노톤 회화의 비중에 비해 주목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예술의 다층적인 양상들이 공존할 때 그 시대의 사회 또한 성숙해진다. 이 글은 기왕에 존재했던 실험미술가들의 입장을 단순히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 개개인의 입장은 기성미술계를 비판하는 정도였으며 소용돌이치는 정치·사회현상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모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작가의 사회적 발언도 강하지 못했고, 집단화되지도 못했으며, 미학적 입장도 명확하지 않았던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가들의 작업에서 그 시대의 사회상황을 읽어 내고 예술과 사회를 연결짓는 작업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사회적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거나 당시의 사회를 투영한다고 여겨지는 작업들을 추출해 내어 그 속에서 사회와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한국뿐만 아니라 그와 연계되는 일본 및 국외의 미술과 사회 상황을 동시대적 연결 고리로 놓았으며 그 속에서 한국의 실험미술에 대한 파악은 보다 분명해진다. 즉 당시 새로운 미술을 시도하던 한국의 미술가들은 주로 국외 잡지를 통해 당시의 해외 미술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며 이를 자신들의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까지 이들 양자간의 조형적 유사성을 지적하며 수동적 수용 이나 맹목적 추종 이라는 해석을 내려온 경우가 많았고 기존의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실험미술가들의 경우에도 조형적으로는 해외의 미술현상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이 한국의 지역적, 정신적 상황 속에서의 이루어졌던 만큼, 자신들이 그 점을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해외의 미술현상과는 다른 문맥을 지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는 그들이 당시 한국의 사회상황을 투영시켰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으며 작가들과의 인터뷰 결과, 자신들이 당시에는 사회를 투영시킨다는 의식을 강하게 가졌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해석이 충분히 의미가 있음에 동의하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이 글은 조형적인 분석을 위주로 하거나 주류가 되는 사건과 기록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기술적인 입장으로부터 벗어나 한 시대에서 다층적인 미술현상들을 공존시키고자 하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우선 60년대 실험미술에서 사회적인 발언의 예로 해석되는 작업들을 제 2회 [無동인]展과 《청년작가연립회》의 활동, 그리고 《제 4집단》이 결성되기 직전 일련의 해프닝들에서 찾아냈다. 다음으로는 유신과 포크송으로 대변되면서 저항가요와 참여문학이 대두되는 70년대 한국의 상황에서 실험미술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제 4집단》의 짧은 활동과 좌절로부터 시작하여 《AG》와 《ST》에서도 사회적인 발언으로 해석되고 암울한 유신의 사회상황 속에서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작업들을 주목한 것이다. 동시에 그 그룹들의 활동이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도 살펴보았다. 끝으로 70년대 중반 무렵 모노톤 회화가 집단적으로 대두되었던 상황에서 실험미술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고찰하였다. 이 시기에 실험미술은 1970년을 전후한 때보다 위축되지만 그 이유가 기존의 일반적인 평가처럼 결집력과 자기 확신의 부족에서 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원인은 미술계에서의 세력의 전이와 당국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외압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960-70년대에 발간된 신문과 잡지 기사를 거의 빠짐없이 확인했으며 생존 작가들의 증언과 당시의 실험미술가들이 썼던 글로 이를 재확인했다.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은 자료와 사건 중심으로 기술된 것이 많았지만 사실상 당시의 자료들을 모두 확인하고 검증하는 작업은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단편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필자는 1960-70년대의 일간신문들과 잡지에 보도된 관련 기사 전부를 검색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논문의 필수적 요소로 중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류들을 수정하는 부수적 성과도 얻었다. 결국 이 글은 이제까지 다루어지지 않았으나 기존의 회화와 조각의 영역을 넘어서서 다양한 실험을 했던 한국의 실험미술에서 사회와 소통하고 당시의 시대상황을 투영시킨 작업들을 발굴하여 새롭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격동기의 한국 사회사 속에서 실험미술을 재조명하고 나아가 사회 속에서 예술의 기능을 고찰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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