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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교방(敎坊)의 연행활동 연구

Title
조선후기 교방(敎坊)의 연행활동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Performing Activities of Gyobang 敎坊 in the Late Joseon Period: with the focus on the dance
Authors
권혜경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한국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최준식
Abstract
오늘날 추어지는 전통춤 종목 중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재구성되거나 정립되었다고 알려진 것이 많다. 공연 무대에서 가장 많이 추어지고, 가장 널리 알려진 승무 · 살풀이 · 입춤 · 태평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춤들의 각 유파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당시 권번의 기생들이나 또는 그들의 선생들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일제강점기 권번이 수준 높은 춤 유산을 오늘로 넘겨줄 수 있었던 것은 전시대와의 연결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러한 연구는 매우 미진하였다. 조선 후기 각 지방 관아에 부속되어 있던 교방(敎坊)은 자체의 기생과 악공을 보유하고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종목의 연행활동을 하였다. 조선시대 교방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진 춤과 관련한 가장 큰 조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선의 무용사에서 교방의 존재는 궁중과 민속에 가려져 부각되지 못했다. 바로 전시대 공연 활동의 중요한 맥락의 하나인 교방에 대한 고찰 없이 권번에만 집중한 연구는 춤의 전승 맥락에 대한 시야를 좁히며 오류를 범하기 쉽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무용사의 관점에서 조선후기 교방의 활동 양상과 연행물을 고찰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지방 관아의 연회에서 실제 연행되었던 춤 종목을 구체적인 사료를 통해 확인하고, 그 내용을 최대한 추적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관(官)을 중심으로 진행된 지방의 공연문화를 이해하고, 각각의 종목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행 전통춤으로 연결되는 맥락을 파악하여 교방 활동의 무용사적 의의를 밝히고자 하였다. Ⅱ장에서는 교방의 규모와 분포 및 역할을 고찰하였다. 조선 후기 교방은 부(府)에서부터 군(郡)과 현(縣)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있었다. 그러나 조선 전 시대를 통하여 여악의 철폐 및 인원의 가감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있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일정하지 않았다고 보인다. 또한, 지리적, 행정적, 군사적 필요에 따라 지역마다 규모의 차이는 있었다. 교방의 역할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지방 관아에서 여는 연회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특히, 평안도와 경상도는 사신과 통신사 일행을 위한 연향이, 함경도는 야인을 위한 연향이 중요했던 점을 알 수 있었다. 둘째는 궁중의 내연에 관기를 선상(選上)하는 것이다. 인조 원년(1623) 장악원 여기(女妓)를 혁파하면서 지방 관기의 선상은 더욱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셋째는 도시의 성장으로 생겨난 유흥문화공간에 교방 소속의 관기와 악공들이 참여하면서 동일한 춤이 연행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넷째는 경향간의 문화유통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Ⅲ장에서는 먼저, 교방의 춤 종목을 궁중정재 계통의 춤과 교방에서 궁중으로 유입된 종목, 기타로 나누어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교방에서 연행된 춤은 그 양식과 성격이 매우 다양하였다. 이어서 이러한 춤들이 교방 해체 이후 전승된 양상을 살피고 무용사적 의의를 밝혀보았다. 조선후기 교방 활동의 무용사적 의의는 첫째, 궁중 정재를 지방에서 수용하여 새로운 버전(version)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통영의 승전무나 동래 고무와 같이 현재까지 전승되는 종목도 있다. 또한 당대 최상류층의 고급문화인 궁중 정재의 연행이 전국적으로 폭넓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민간 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검무, 항장무, 배따라기 등 교방 특유의 예술성 높은 종목을 개발하여 전국적으로 유통, 전승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현행 전통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권번 활동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넷째는 각 지방마다 교방이 설치되어 지방 문화의 근거지 역할을 함으로써 오늘날 전국적으로 다양한 유파와 종목의 춤이 전승될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지역에 따라 사투리가 다르듯 같은 종목이라도 사위와 구성이 다른 다양한 맛의 춤이 발달하여 춤문화를 풍성하게 하였다. 본 논문의 가장 큰 성과는 조선 후기 교방에서 연행되었던 춤 종목을 각종 사료를 토대로 종합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이다. 각 종목들의 내용과 전승 맥락을 함께 고찰하여 교방 활동의 실상에 근접할 수 있었고, 이러한 내용을 통해 무용사에서 교방이 차지하는 위상이 좀 더 분명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료가 충분하지 못해 추측에 그친 내용이 많다는 것은 아쉽다. 또 본 연구에서는 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여 기악, 노래 등 전 장르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양상을 고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It is well known that many of Korean traditional dances were reconstructed and performed in Gwonbeon 券番. However, the research on Gwonbeon's activities in the late Joseon period is rarely found. Without consideration of activities of Gyobang which is an origin of Gwonbeon, research on Gwonbeon could narrow the outlook of dance transmission, since Gyobang was crucial in the performance inheritance context. Gyobang in Joseon dynasty was the largest organization that had a nationwide network in terms of performing dances. Nevertheless, due to two different viewpoints of on the court and folk dance, the problems of Gyobang have not been highlighted in study of dance history.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examine the aspects of Gyobang's activities and repertori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period. I researched dances which were actually performed in the local government banquets from the concrete historical materials. Also I tracked historically the contents of each dance as much as possible. With this research, firstly, I tried to comprehend the culture of provincial performances held at Gwan(官 a local government); and secondly, I tried to understand the context of each dance piece's transition through the colonized period by Japan up to nowadays in order to find the meaning of Gyobang's activities in dance history which is interconnected with today's traditional dance. In chapter Ⅱ, scale and distribution of Gyobang are examined. There were four big roles of Gyobang ; first, having a performance in the local government banquet, for example, in Pyeongan-do and Gyeongsang-do, it was important to have banguets for envoys, in Hamgyeong-do for neighboring foreigner as well ; second, sending local Gisaeng(妓生, female entertainer) to central government's banquet(Naeyeon 內宴). In the first year of King Injo(1623), since the Gisaeng system of Jangakwon 掌樂院 was abolished, local Gisaeng were more frequently sent to central government in larger scale ; third, participation of Gisaeng and Akgong(樂工 instruments players), members of Gyobang, in the places for amusement which were newly created because of the growth of cities ; fourth, serving as a path between the capital and the whole country. In chapter Ⅲ, I firstly, reviewed various Gyobang dances by dividing into 3 sections : the style of Jeongjae 呈才 : works imported to court from Gyobang : the others. Then, I examined the aspects of inheritance after the disorganization of Gyobang, and tried to find the meaning of Gyobang's activities in dance history. It is firstly, creating a new version of dance pieces by receiving court Jeongjae 呈才. In addition, the performances of court dance which was the culture of the highest class were held all over the country. This fact has a significance, since this phenomena had an indirect influence on raising the civil culture standard to higher quality. Second meaning of Gyobang's activities is that they created artistic dance pieces of their own, like Geom-mu(劍舞 sword dance), Hangjang-mu 項莊舞, Baettalagi and so forth, and they distributed these works all over the country. Third, Gyobang was the base of Gwonbeon's activities directly connected with today's traditional dances. Fourth, because Gyobang played a central role in local culture, various schools and dances could have been inherited till today. As each province has its own dialect, despite same dance, it feels different according to the provinces or schools, so that dance culture became rich and various. The contribution of this dissertation is to identify collectively the Gyobang dances in the late period of Joseon Dynasty. Having reviewed the context and background of each dance, I could approach the real state of Gyobang's activities. Therefore, I think that the status of Gyobang could become more clear and visible in danc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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